1부. 마음이 머무는 자리
조금만 눈을 돌리면 바다가 보인다. 광안리, 송도, 송정처럼 이름만 들어도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한 도시. 이곳은 부산이다. 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바다에 익숙했다. 그래도 그런 바다를 굳이 가까이서 보겠다고 길을 나설 때가 있다. 심지어 차를 몰고 가기도 한다. 다행인 것은 오래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이런 걸 여행이라 부르겠지만, 나에게는 ‘숨 고르기’다. 목적지를 정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허전함을 채우고 싶어서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까워지는 바다 냄새가 내 안의 굳은 창문을 열어주는 듯하다. 익숙한 짠내는 따뜻함을 주고, 묵은 생각들을 끌어낸다.
누군가 옆에 있으면 좋겠지만, 그 또한 번거로운 일이다. 날짜를 정하고, 사람을 모으고, 시간까지 맞춰야 하니까. 또, 옆 사람에게 신경을 쓰다 보면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기 어렵다. 그래서 일부러 고독해지려고 시간을 내고 몸을 움직인다. 번거로움을 사서라도 감내하는 나.
하지만 요즘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을 매일 선물처럼 누린다. 출근길에 펼쳐지는 바다 덕분이다. 애쓰지 않아도 주어지는 풍경이 내게는 일상의 ‘숨구멍’이 된다. 바닷바람이 마음을 다독이고 하루의 시작을 부드럽게 연다. 수평선과 맞닿은 푸른빛을 바라보면, 복잡했던 생각이 걸음을 멈춘다.
‘흰여울문화마을’
출근길에 만나는 동네다. 해안선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오래된 골목길이 카페와 볼거리로 다시 태어나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외부인들로 붐비는 탓에 주민들은 불편할지도 모르지만, 상가가 살아나는 모습에 미소가 번지는 곳이다. 어릴 적부터 오가던 곳이라 나에게는 더없이 익숙하다.
‘흰여울문화마을’이라는 이름은 봉래산 기슭에서 여러 갈래 물줄기가 바다로 흘러내리는 모습이 흰 눈이 쌓이는 듯 보여 붙여졌다. 이곳은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 <해운대>, <연애의 온도>에도 등장한다. 버려진 집들을 문화공간으로 살려낸 이 마을은 이제 부산의 대표적인 감성 여행지가 되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벽화와 골목마다 사람들이 남긴 소소한 이야기가 숨어 있고, 멀리 수평선 너머 햇살이 부드럽게 눈가에 내려앉는다. 눈이 부셔 잠시 눈을 감으면 파도 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든다. 그럴 때면 바람을 깊게 들이마시기를 추천한다. 익숙한 골목이라도 그날의 하늘과 빛이 달라지면 또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나는 이곳을 매일 출퇴근길에 만난다. 편도 약 25분, 왕복이면 하루 50분이다. 지금 사는 집에서 영도로 들어오려면 15분 정도가 걸린다. 영도로 진입해 바닷길을 만나는 순간, 마음이 시원해지고 가슴이 뻥 뚫린다. 출근길은 늘 전쟁이다. 아이와 나를 챙겨야 하고, 표정이라도 굳으면 괜한 다툼이 생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특히 사춘기 둘째의 마음을 다독이는 일은 더 힘겹다. 겨우 그런 시간을 지나 집을 나서는 순간, ‘힐링제’가 필요하다. 차에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그리고 영도 바닷길을 만나면 나는 ‘멍’해진다. 그래서 이 길이 참 좋다. 바다가 보이고, 그로 인해 마음이 평온해지는 시간. 가끔은 그 순간에 누군가에게 문자나 톡을 보낸다. 내 기분을 나누고 싶어서. 내가 행복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다.
‘뭔가 아쉽다?’
이럴 때는 차 안에서 음악을 튼다. 사람마다 차를 고르는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는 오디오 음질을 중요하게 본다. 자동차라는 작은 공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그 속에 잠기는 일. 그것 또한 나를 위로하고 다독인다.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나의 하루를 미리 보여주는 창이다. 괜히 좋은 생각을 해보고, 그날의 과제나 프로젝트에 희망을 얹는다. 피곤한 아침, 무거운 눈꺼풀과 빼곡한 일정 속에서도 경쾌한 음악은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반대로 마음이 들뜰 때는 차분한 멜로디로 스스로를 가라앉힌다. 그렇게 음악은 나의 감정을 조율한다. 흐르는 가사를 따라 부르며 어깨를 들썩이는 순간, 누가 보면 웃을 일이지만, 나만의 공간이라 편안하다.
음악이란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
첫째, 감정을 조절한다. 마음이 가라앉을 땐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쌓인 감정을 풀어낸다. 예전에 한의원에 누웠을 때, 불안과 화로 가득했던 마음이 특별한 치료도 없이 편안해진 적이 있다. 나중에 돌아보니 그곳에 은은히 흐르던 클래식 음악 덕분이었다. 그 뒤로 나는 편안해지고 싶을 때 클래식을 찾는다.
둘째, 추억을 불러온다. 음악은 시간의 지문 같다. 여고 시절,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방송반에서 음악을 틀어주곤 했다. 가요, 올드팝. 그런데 요즘도 그때 들었던 음악이 가끔 흘러나온다. 그 순간, 나는 어느새 여고생이 되어 있다. 음악은 나를 그 시절로 되돌려 놓는다.
셋째, 집중을 돕는다. 복닥거리는 집에서 자라서일까. 학창시절엔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상을 펴고 공부했다. 지금도 글을 쓰거나 책을 볼 때 카페나 도서관의 중앙에 앉는 편이다. 집중에는 문제가 없지만, 이럴 때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틀면 한층 더 몰입된다. 집중력을 높여주는 음악은 마치 나를 더 세밀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현미경 같다.
나는 가사가 또렷하게 들리는 곡을 좋아한다. 외국곡도 좋지만, 우리말 가사가 주는 울림은 남다르다. 노랫말 속에는 삶의 온도가 묻어나고, 한 문장이 위로처럼 다가온다. 무심코 들은 가사 한 줄이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심현보 작사가의 책 『작사가의 노트』를 읽었다. 책 속에서 그는 노랫말이란 결국 누군가의 삶을 말랑한 언어로 꺼내 놓는 일이라고 했다. 2024년, 부산 기장군의 한 서점에서 열린 그의 심야 북토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주제는 ‘일상이 노래가 되는 마법’. 작사가란, 시인처럼 일상의 장면을 언어로 바꿔내는 사람이다. 평범한 순간이 그의 눈에는 특별한 언어가 되고, 그 진심이 담긴 가사는 사람의 마음을 녹인다. 내가 누군가의 노래를 들으며 위로받았던 것처럼.
아이보다 내가 먼저 출근한다. 둘째는 스스로 일어나 챙겨 등교한다. 엄마 마음에는 늘 미안함이 남는다. 일하는 엄마의 죄책감. 아이가 아픈 날엔 그 마음이 더 크게 다가온다. 비몽사몽간에 눈을 뜨지 못하는 아이에게 “퇴근하면 병원 가자”라는 말만 남기고 집을 나설 때면, 누군가 내 다리를 잡아당기는 듯하다. 그 순간은 원망스럽기도 하고,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는 걸까’라는 자책이 몰려온다. 꼭 해야 할 무언가를 놓친 듯한 기분. 그럴 땐 어김없이 차에 오르자마자 음악을 튼다.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싶어서. 가라앉은 마음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노랫말 하나에 기대어 엄마로서의 죄책감을 녹인다.
출근길 25분 동안 차 안을 가득 채우는 음악은 나를 감싸는 담요 같다. 그것이 멜로디든 가사든, 그 안에는 내 마음을 녹이는 무언가가 있다. 그 시간이 나를 일으키고 다시 하루를 걷게 한다. 자동차라는 공간 안에서 흘러나오는 울림, 그것으로 하루치 감성을 충전한다. 그 안에서 나를 다독이고, 사랑할 용기를 얻는다.
지금도 음악을 틀어놓았다. 잊고 싶은 현실도, 엄마의 무게도, 잠시 내려놓는다. 그 힘이 고스란히 하루에 스며들기를 바라며. 지금 듣는 곡의 제목은 ‘무조건’. 제목처럼 오늘도 나 자신에게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낸다. 지금의 나로도 충분하다고. 그렇게 하루를 다시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