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마음이 머무는 자리
‘너는 누굴 위해 태어났니?’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나는 이상한 냄새에 눈을 떴다.
‘어, 이게 뭐지?’
낯선 냄새에 잠이 덜 깬 채로 이불을 걷고는, 옆에서 주무시던 엄마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러고는 물었다. 그 순간, 발끝에 묘한 감촉이 전해졌다. 방 아랫목 쪽에서 덩어리가 만져졌고, 고개를 숙여 들여다보았다. 이불에 돌돌 말려 있는 그것.
'뭘까?'
나를 깨운 냄새도 바로 거기에서 나는 듯했다.
“엄마, 이게 무슨 냄새예요?”
“아, 메주를 띄우는 중이라서 그래.”
“냄새가 너무 지독한데. 윽.”
“원래 그런 냄새가 나는 거야. 메주가 뜨는 동안에는 좀 참아야 돼.”
“아, 너무 심하다.”
“참아야지, 어쩌겠어.”
엄마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고약한 냄새를 안고 다시 잠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었다.
‘된장을 안 먹으면 되지, 이런 냄새까지 참아야 해?’
투덜거리는 나를 달래던 엄마.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메주는 전통 장(간장, 된장, 고추장 등)의 기본 재료가 되는 발효 덩어리 콩이다. 삶은 콩을 으깨 벽돌 모양으로 빚은 뒤, 겨울철에 띄워 곰팡이와 미생물이 자연 발효되도록 만든다. 그 과정에서 특유의 냄새가 난다. 한국 장 문화의 핵심이자 발효 식품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메주는 콩을 삶아 찧어 모양을 만들고, 따뜻한 방이나 볏짚더미에 걸어둔다. 볏짚에는 고초균과 곰팡이 같은 유익한 미생물이 있어 자연 발효를 돕는다. 보통 2\~3주가 걸리는데, 이때 메주 표면에 곰팡이가 피며 독특한 향이 난다. 충분히 발효된 메주는 햇볕에 말려 곰팡이와 잡균을 줄이고 저장성을 높인다. 이후 장을 담글 때 항아리에 소금물과 함께 넣으면 간장과 된장으로 나뉜다.
삼국시대에도 장을 담갔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예맥 사람들은 장을 잘 담근다”라는 구절이 있어, 이미 오래전부터 메주를 통한 발효 문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갓 삶은 따끈한 콩은 왜 바로 된장으로 이어지지 못할까?’
콩 본연의 고소함을 살리면서 된장을 만들 수 있다면, 적어도 이 냄새 때문에 잠에서 깰 일은 없을 텐데. 하지만 삶은 콩이 충분히 묵고, 시간의 냄새 속에서 버무려져야 비로소 된장이 된다는 사실. 어린 나에겐 답답한 과정처럼만 보였다.
메주로 빚어진 콩은 삶은 다음에도 수분을 빼고 곰팡이와 시간의 숨결을 품어야만 진짜 자기 역할을 한다. 어떻게 보면 메주는 자기 존재의 껍질을 벗어야 진정한 장으로 거듭날 수 있는 셈이다.
어린 시절 만난 메주는 내게 좋은 첫인상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 냄새를 피하려 숨을 참게 만드는 존재였다.
“이것 좀 밟아볼래?”
“네?”
엄마는 삶은 콩을 자루에 넣으시고, 나에게 그것을 밟으라고 하셨다. 자루 가득 콩이 담겨 있었고, 맨발로 올라서니 뜨거웠다.
“엄마, 너무 뜨거운데요.”
“좀 있으면 괜찮아져.”
엄마들은 왜 그렇게 거짓말을 태연히 하실까. 아무리 밟아도 뜨거움은 사라지지 않았고, 발은 기름기 때문에 미끄러졌다. 자빠질 뻔하기도 했고, 그 모습을 보고 온 가족은 웃음을 터뜨렸다.
‘나한테만 시키고.’
불만이 가득했지만 엄마 말씀을 어길 용기는 없었다. 게다가 이 작업이 끝나면 엄마의 칭찬이 쏟아졌으니, 그것으로 만족했다.
이불속에 있던 메주는 집 안 한구석에 몰래 들어온 이상한 손님 같았다. 적어도 어린 시절에는.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식당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면 “여기 된장찌개 하나요” 하고 자연스럽게 말한다. 그 목소리엔 된장찌개에 대한 기대가 가득 담긴다. 칼칼하게 풀어진 된장에 채소를 넣고, 청양고추 하나 썰어 넣으면 내 입맛에 딱 맞다. 고운 고춧가루 한 숟가락, 고추장 한 숟가락을 보태면 밍밍하지 않으면서 깊은 맛이 난다. 여기에 손두부 한 모를 썰어 넣으면 콩과 콩의 만남으로 완성된 단백질 폭탄. 그 맛은 언제나 어울린다. 소주 한 잔 곁들이기에도, 바쁜 하루 끝 따뜻한 밥상에도 잘 녹아든다. 아니, 마음까지 녹인다.
“와, 이거 진짜 맛있다. 완전 엄마 맛이야!”
아이들도 이렇게 말할 때가 있다. 그만큼 된장은 내게 익숙하고 소중한 친구다. 메주 냄새는 여전히 쉽지 않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그리워질 정도다.
남편은 또 어떤가. 감기 기운이 올 때면 어김없이 퇴근길에 전화를 걸어온다.
“입맛이 없는데, 오늘 저녁은 된장찌개 어때요?”
그 말을 들으면 명절에 시어머님이 담아 보내주신 된장을 김치냉장고에서 꺼낸다. 숟가락으로 된장을 가득 퍼 담고, 애호박 하나를 반달 모양으로 썰고, 양파를 썰고, 파는 된장이 팔팔 끓을 때 마지막에 넣어 향을 살린다. 일명 된장찌개의 ‘화룡점정’이다. 된장이 바글바글 끓어오를 때 파를 넣으면 향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진하다. 이렇게 된장찌개를 식탁에 올리면, 왠지 모르게 밥상이 더욱 풍성해진다.
식탁 위에서의 된장이 이렇다면, 생활 속 된장은 또 다른 모습이다. 아이가 머리를 부딪쳐 혹이 생기거나 상처가 나면 된장을 바르던 풍습. 나는 직접 보진 못했지만, 어른들의 말속에 늘 전해졌다. '된장은 해독 효과가 있다'는 믿음. 어쩌면 그것은 누군가의 다친 마음에 바르는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비위생적이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그 순간 된장이 먼저 떠올랐다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된장이 우리 삶 속에 얼마나 깊이 스며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음식 이상의 존재, 그것이 된장이다.
이처럼 된장은 우리의 삶 속에서 다양한 역할을 한다. 그러니 메주가 된장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발생하는 냄새쯤은 이겨내야 할 숙제다. 무엇이든 불편한 과정을 지나야 좋은 결과를 얻는 법이니까.
된장이 그러하듯, 사람도 마찬가지다. 성숙하기 위해선 눈물을 흘려야 하고, 갈등을 겪으며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 눈물 젖은 시간을 견디고 나서야 단단함을 얻는다. 어른들의 기다림과 믿음 속에서 아이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나 역시, 누구든 그러하다. 하지만 된장이 제대로 숙성되지 않으면 제 역할을 못하듯, 사람도 아이의 마음에만 머물 수는 없다. 시간을 견디는 힘이 결국 사람을 다듬는다.
나는 학교에서 이 과정을 날마다 본다. 크고 작은 다툼, 흔들리는 마음, 이겨내고 다시 웃는 얼굴. 그 속에서 아이들은 조금씩 자라고 있다. 우리 집 두 아이도 마찬가지다. 엄마로서 내가 얼마나 믿고 기다려 주었는지, 아이가 혼자 눈물을 흘리며 성숙해 가는 시간을 얼마나 묵묵히 지켜봤는지 돌아본다. 더 믿어줘야 하는데, 흔들리며 아이를 불안하게 하지 않았는지 반성한다. 이런 시간은 아이만 성장시키는 게 아니다. 엄마도 함께 자란다. 아이를 통해서, 그 시간을 통해서. 그래야 성숙한 아이와 엄마가 함께 더 나은 길을 걸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우리는 한 단계 성숙하는 중이다.
생콩이 오랜 기다림 끝에 따뜻한 식사로 거듭나듯, 메주의 냄새로 잠을 깼던 어린 내가 이제는 된장찌개의 향기로 하루의 피로를 녹인다. 그 속엔 엄마의 손맛, 기다림, 사랑,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 그릇의 된장찌개가 가족의 마음을 이어준다.
내일은 꼭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여야겠다. 애호박과 두부를 송송 썰어 넣고, 향긋한 파로 마무리한 그 한 끼가 오늘보다 따뜻한 내일을 데워줄 수 있도록. 그런 마음을 담아, 된장을 꺼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