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마음이 머무는 자리
“엄마, 안 주무셔요?”
밤 12시 17분. 첫째 아이의 방문이 열렸다. 큰아이는 학교에서 낸 과제를 하고 있었다. 과제의 양이 많아서인지 새벽까지 뜬눈으로 보내는 날이 잦다. 그러다 가끔 부엌으로 나와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한다. 엄마가 거실에 있으면 “먹으면 안 돼”라는 잔소리를 들어서일까, 살짝 방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먹을 것을 찾는다. 화장실에 나가던 내 눈과 아이의 눈이 마주쳤다.
“엄마, 뭐 먹을 것 없어요?”
“응, 잘 모르겠네. 냉장고 열어볼래?”
저녁밥을 먹은 지 여섯 시간이 훌쩍 지났으니 배가 고플 만하다. 보통 이 시각이면 우리 가족은 모두 잠들어 있지만, 오늘은 각자의 할 일이 있어서인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게다가 하필 텔레비전에서는 군침 도는 음식 광고와 먹방이 줄줄이 흘러나오니 허기를 참는 건 더 쉽지 않다.
허기가 몰려오는 순간, 결국 우리 둘은 차오르는 식욕을 버리지 못하고 배달 앱을 열었다.
“우리 뭐 좀 시켜 먹을까?”
“그럴까요? 진짜 괜찮아요?”
우리 집에는 밤늦은 시간 배달 음식을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 뜻밖의 엄마 제안에 큰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오른손으로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내 ‘오케이’가 떨어지자마자 휴대폰을 집어 들고 화면을 터치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대학입시 준비로 늘 바쁘고 지쳐 있었지만, 올해는 그 큰 산을 넘어선 덕분인지 여유가 느껴진다. 물론 대학 생활도 만만치 않지만, 대학입시처럼 당락을 좌우하는 시험을 앞둔 건 아니니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도, 그리고 아이 본인도 한결 편안해 보인다. 어쩌면 오늘은 내가 더 아이와 함께 ‘야식’을 즐기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새벽 시간, 둘이서 몰래 배달음식 데이트를 하고 싶었던 마음.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큰아이 얼굴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번졌다.
거실에는 사각형 여섯 자리 카페 테이블이 놓여 있다. 가족이 텔레비전을 보든, 각자의 활동을 하든, 한 공간에서 지내는 시간을 늘리고 싶어 들여놓은 가구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테이블을 들인 이후 가족은 자연스레 거실에 모이기 시작했다. 릴레이 독서, 식사, 협동화 그리기… 각자가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거실’이라는 한 공간 안에 있다는 것. 그 덕분에 대화의 양이 늘었다. 아이들은 방에서 쓰던 노트북을 들고 나와 테이블 위에서 공부를 하기도 한다. 그 모습만으로도 나는 미소가 지어진다.
외국에는 거실 공부를 권장하는 나라가 있다. 주로 미국, 영국 등 서구권 국가들이다. 특히 미국 교육 전문가들은 아이가 혼자 방에서 공부하기보다 거실이나 가족이 모이는 공간에서 공부하는 것을 권한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부모의 자연스러운 관찰. 아이가 공부하다가 딴짓을 하는지, 어려워하는 부분은 없는지 부모가 곁에서 볼 수 있다.
둘째, 정서적 안정. 가족이 있는 공간에서 공부하면 외롭지 않고 심리적으로 편안하다.
셋째, 소통의 습관. 공부하다 궁금한 게 생기면 바로 질문하고 대화할 수 있어 학습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특히 미국 교육학자들은 “아이의 침실은 휴식 공간, 거실은 학습 공간”이라는 원칙을 강조한다.
내가 어릴 적에는 단칸방에서 온 가족이 함께 지냈다. 공부방이라는 건 꿈도 못 꿀 일이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나는 상을 펴고 공부했다. 수학이든 영어든. 그런데도 신기하게 집중이 잘됐다. 옆에서 동생이 배고프다고 울면, 나는 바로 책을 치우고 그 상에서 밥을 먹었다. 그렇게 산만한 환경에서 공부했기에 지금도 왠만한 소음에는 개의치 않고 집중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경험을 돌이켜보면, 공동 공간에서 공부하는 것이 장점이 있다.
오늘은 큰아이와 새벽 시간에 맛있는 차와 간식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낮에는 무심히 지나쳤거나 어색해서 꺼내지 못한 말들이 새벽에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요즘 우리 모녀의 주된 화제는 둘째 딸이다. 사춘기를 맞은 둘째는 최근 전학을 두 번이나 겪었고, 그 과정에서 눈물을 흘렸다. 누구보다 힘들었을 사람은 둘째 자신이겠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은 아팠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순간이 많았다. 그 마음을 큰아이에게 털어놓으면 한결 가벼워진다. 돌아보면 큰아이도 분명 힘들었을 텐데 말이다.
“엄마, 가족에게는 가족 이야기를 하는 게 좋지 않대요.”
“응?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럼 누구한테 해야 해?”
“그냥 상담사나 제삼자에게 하는 게 좋대요.”
처음엔 쉽게 이해되지 않았지만 곧 고개가 끄덕여졌다. 가족에게 또 다른 가족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누구 한 명을 생각해서 말하면 다른 사람이 서운해질 수도 있는 관계. 그것이 가족이다. 예를 들어 친정엄마에 대한 불만을 남편에게 이야기하면 남편은 난처해진다. 아내와 장모 사이에서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고민하게 되니까.
“정말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엄마도 앞으로는 가족 얘기는 줄여볼게.”
둘째를 바라보는 내 시선과 언니인 큰아이의 시선은 다르다. 그래서 큰아이의 조언이 내게 도움이 된다. 동시에 ‘아이가 많이 컸구나’ 싶은 마음에 뿌듯하다.
우리는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 이제 방으로 갈게요. 과제를 다 못 끝내서요.”
“그래, 그래.”
짧은 데이트였지만, 이런 시간이 가끔은 꼭 필요하다고 느낀다. 새벽, 다른 식구들이 잠든 틈을 타 아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일. 따뜻하다. 스무 살을 훌쩍 넘긴 성인이 된 큰아이. 다음에는 함께 술 한 잔 나누며 이야기하고 싶다.
이런 나의 ‘새벽 사랑’은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잠이 적었던 어린 시절부터일 것이다. 여섯 식구가 단칸방에 부엌 하나 딸린 집에서 살다 보니 낮보다 밤이 더 북적였다. 모두가 방 하나에서 자려면 ‘테트리스’처럼 이불을 나눠야 했다. 식구를 3:2로 나누고, 머리와 발을 번갈아 배치하는 식. ‘머리-발-머리-발-머리’. 한 이불에 셋이 눕게 되면 가운데 낀 사람은 추웠다.
“이불 좀 그만 들썩거려!”
소리를 질러도 소용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코미디 한 장면 같다.
나는 4남매 중 장녀다. 위로 오빠, 아래로 여동생 둘. 둘째였지만 맞벌이하던 부모님 대신 동생들을 챙기는 건 내 몫이었다. 오빠는 아들이자 장남이라는 이유로 집안일에서 면제였고, 나는 같은 고등학생이면서도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온 오빠의 저녁상까지 차렸다. 억울해서 엄마에게 투덜거려도 집안 사정은 변하지 않았다. 반항할 용기도 없이 세월은 흘렀고, 그 생활은 오래 이어졌다. 지금 내가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큰아이를 더 챙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 큰딸만큼은 동생 때문에 속상한 기억을 남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그런 바쁜 시절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있었다. 바로 ‘새벽 시간의 여유로움’이다. 새벽에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잠들지 못하면, 조용한 그 시간을 나만의 시간으로 삼았다. 발 디딜 틈 없는 이불 사이를 조심조심 지나야 했고 큰 소리도 낼 수 없었지만,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할 만하다. 흐릿한 전깃불 아래서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며 낮에 있었던 일을 정리했다. 카세트 라디오가 생긴 후에는 음악까지 들었다. 그 시간만큼은 내가 오롯이 도로시가 된 듯,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새벽형 인간’이라 부르며 그 시간을 즐겼다.
이런 습관은 고등학생 때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낮에는 눈이 퀭하고, 밤이 되면 오히려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그러다 불쑥 가족에게 들켜 깜짝 놀라는 일도 많았다.
“얼른 자야지.”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면 잠든 척하다가 다시 일어나곤 한다. 돌아보면 나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아이는 아니었나 보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어릴 때 엄마는 참 착했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밤에 딴짓하기, 숙제 미루기, 가끔 학교 땡땡이치기’까지 했던 아이였다. 지금 우리 딸들이 새벽까지 안 자는 걸 보면, 역시 나를 닮은 게 틀림없다. 과연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나는 학창 시절이 끝나면서 ‘새벽 사랑’도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진짜 시작은 아이를 낳고 나서였다. 첫째가 쉽게 잠들지 못하던 시절, 겨우 잠이 들면 나는 오히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잘 시간이 지나버린 탓이다. 육아로 지친 몸과 마음을 새벽의 고요로 달래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힘들기보다는 편안했다. 혼자가 싫어 결혼했지만, 가끔은 이런 ‘혼자만의 새벽’이 간절했다.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쓰거나, 잠든 아이 곁에서 기도했다.
“제발 내일은 일찍 잠들게 해 주세요.”
아이를 일찍 재우는 방법은 기도 외에는 없어 보였다. 물론 기도한다고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조금 전에도 둘째는 자는 척하다 들켜 “얼른 자!”라는 잔소리를 들었지만, 내 마음속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엄마도 너만 할 때 그랬어.’
자야 할 시간인데 원두커피 한 잔을 내렸다. 오늘만큼은 이 새벽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시간의 끄트머리를 붙잡는다.
그냥, 그러고 싶은 날이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