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밤, 나를 안다
남편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눈을 뜨니 시계는 아침 8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은 둘 다 출근하지 않는 일요일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깨운 걸까.
“무슨 일 있어요?”
“별일은 아니고요. 같이 커피 마시러 가자고요.”
첫째와 둘째는 아홉 살 터울이다. 늦둥이를 키우는 일이 버겁기도 했지만, 올해는 일곱 살이 된 둘째 덕분에 아침이 여유로워졌다. 작년까지만 해도 눈뜨자마자 “엄마!”를 부르던 아이 때문에 둘이 함께 외출한다는 건 상상조차 못 했다. 하지만 이제는 가능해졌다.
특히 첫째는 우리가 외출하는 휴일 아침을 좋아한다. 나도 어릴 적 그랬다. 4남매 중 하나였던 나는 부모님이 외출하는 날이면 신이 났다. 마음대로 먹고, 자고, 놀 수 있었으니까. 아마 그 기억 때문일 것이다. 나는 우리가 잠시 외출하는 이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선물’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집을 비우는 일에 대한 자책감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요?”
“오랜만에 오륙도 보러 갈까요?”
부산 남구 용호동, 바다 끝자락에 자리한 작은 섬, 오륙도. 이름의 유래도 단순하지만 정겹다. 밀물과 썰물에 따라 섬의 개수가 다르게 보여 다섯 개 또는 여섯 개로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섬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해맞이공원’이다. 우리 집에서 차로 20분이면 닿는다. 작은 공영주차장이 있고, 그 옆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와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카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휴일 아침이면 종종 그곳을 찾는다.
‘하늘 산책로’라 불리는 투명한 유리 바닷길은 발밑으로 바다가 보여 아찔하면서도 짜릿하다. 해맞이공원에서 바라보는 오륙도 앞바다는 언제나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시원하다.
우리는 차를 세우고 공원으로 올랐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이미 삼십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고, 관광버스에서 단체로 내리는 모습도 보였다. 사람들의 움직임 속에서 ‘봄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는 어디서 보든, 아름답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태종대와는 또 달랐다. 사람과 풍경이 어우러진 그 바다는 잘 그려진 수묵화 같았다.
풍경을 충분히 눈에 담은 뒤, 우리는 카페로 향했다. 삼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오륙도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테이블은 여덟 개 남짓, 2인석과 4인석이 섞여 있었고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10분쯤 기다리자, 자리가 나서 창가에 앉을 수 있었다. 대부분 가족 단위 손님이었고, 아이들과 함께 간식을 즐기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졌다. 문득 두 아이를 집에 두고 온 것이 아쉬웠다.
커피 두 잔과 파이를 주문했다. 달콤한 파이 한입에 커피 향이 더 진하게 퍼졌다.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오륙도를 바라보니, 마치 고급 유람선 위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일요일 오전을 천천히, 느긋하게 보냈다.
“버스 왼쪽으로 보이는 섬이 오륙도입니다. 섬의 개수가 다섯 개 또는 여섯 개로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어린 시절, 나는 이런 설명을 관광버스 안에서 처음 들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학창 시절 대부분을 영도의 태종대에서 보냈다. 태종대는 부산을 대표하는 명소 중 하나다. 신라 태종 무열왕이 삼국통일의 꿈을 품고 이곳을 찾았다고 해서 그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울창한 숲과 기암절벽,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영도의 끝자락, 그곳이 태종대였다.
지금은 ‘다누비’라는 순환 열차가 있지만, 예전엔 버스가 그 역할을 했다. 안내원이 마이크를 들고 지나치는 곳마다 설명을 해주었고, ‘오륙도’는 그 설명 중 하나였다. 나는 그 버스 안에서 처음 오륙도를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그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여러 개의 섬과 그 위를 날던 갈매기들은 마치 사회 교과서 속 한 장면 같았다.
오륙도에는 하얀 건물이 하나 있다. 사람 없이 바닷길을 안내하는 무인 등대다. 내가 어릴 적에는 태종대 등대 근처에서 유람선을 타면 오륙도까지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태종대와 오륙도는, 고향을 떠나 지내던 시절 부산에 올 때마다 꼭 들르는 장소가 되었다.
한 번은 태종대에서 바라보던 오륙도 때문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늘 작게만 보이던 그 섬이 어느 날은 열 배쯤 커 보였기 때문이다. 해맞이공원 덕분이었다. 불과 백 미터 앞에서 마주한 오륙도는 내 기억 속의 섬과 달랐다. 웅장하고 듬직한 모습에, 마치 그 속으로 빨려들 것만 같았다. 바다를 좋아하면서도 두려워하던 나는, 섬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놀라 비명을 질렀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노래 제목처럼, 좋으면서도 가까워지기 두려웠던 걸까. 차를 타고 이기대 공원으로 향하는 길, 점점 또렷해지는 오륙도의 모습에 나는 마음을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다.
“어떻게 세면 여섯 개야?”
“나도 잘 모르겠어.”
“거짓말하지 마. 나중에 내가 다시 세어볼 거야.”
아무리 세어봐도 다섯 개뿐인데, 여섯 개라던 말에 섬의 개수를 세어보던 기억이 난다. 등굣길에도, 하굣길에도 몇 번이고 셌다. 어느 날은 정말 여섯 개로 보여서 신나게 떠들었고, 내기를 하지 않은 걸 후회하기도 했다. 남매끼리 섬의 개수를 두고 편을 갈라 다툴 만큼, 오륙도는 우리에게 참 매력적인 존재였다.
내가 오륙도를 찾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곳에 가면 나는 엄마도, 교사도, 아내도 아닌 온전한 ‘나 자신’으로 돌아간다. 그것도 완전히 어린 시절의 나로 말이다.
그때 나는 태종대를 반 바퀴 돌아 30분을 걸어 등교했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는 그 길이 두세 배는 더 멀게 느껴졌다. 부산에 드물게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아침, 싱크홀 위를 뛰다 미끄러져 숨이 막힐 뻔하기도 했고, 길가의 두꺼비 모양 약수터에서 물을 마시며 갈증을 달래기도 했다. 도로보다 한 발 높이 있던 동굴 앞을 지날 때면 여동생을 놀리며 무서운 이야기를 꺼냈고, 으스스한 날엔 노래를 부르며 겁을 달래기도 했다.
하굣길에 처음 일몰을 알았다. 궂은날 혼자 집에 가야 했던 날에는 괜히 서러워 울기도 했다. 비 오는 날 엄마가 데리러 오지 않는다며 투덜대던 나였지만, 어떤 날엔 엄마가 외출하기를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앞서 걷던 낯선 사람의 발소리에 겁이 나서 집까지 달려가던 그 시절의 나.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그 모든 여백을 따뜻한 기억이 채워주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만나러 오륙도로 간다. 그 섬이 무엇이길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겹고 따뜻하다.
“오늘은 섬이 몇 개일까?”
“나도 몰라.”
잠든 동생을 깨우며 던진 내 질문에 무성의하게 대답하던 동생. 그 모습이 우스워서 또 묻고, 또 묻곤 했다. 바다는 넓은 것이 장점이다. 그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힘들었던 일도 잊고, 마음속에서 재밌는 상상들을 펼쳤다. 동화 속 인어공주가 되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왕자님을 만나기도 했다. 숲과 바다가 어우러진 오륙도의 풍경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완벽한 힐링제였다.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같다. 살림이 벅차고, 누군가의 말이 마음을 거스를 때면 나는 이곳을 찾는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멍’을 때리게 되는 곳.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다 보면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진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내 안의 어린 마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다. 그래서 나는 그 동심을 불러내어 잠시 현실을 잊는다. 그렇게 머무른 뒤에는, 다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내 어린 시절이 묻어있는 너, 나는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