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하나로 채운 방

2부. 밤, 나를 안다

by 윰글

"또 정전이다."

어렸을 땐 왜 그렇게 정전이 자주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집 안에는 늘 초 몇 자루가 갖춰져 있었다. 갑자기 정전되면 옷장 속 구석에 보관 중이던 초를 꺼내 우리만의 촛불 잔치를 벌였다. 위험한 일이었는데도, 나이가 어려서였을까? 이런 위험함은 우리의 행동을 멈출 이유가 되지 못했다.

집 안 여기저기에 초를 하나씩 켜고 불을 붙인다. 모양 놀이도 하고, 멀쩡히 켜진 촛불을 일부러 입김을 불어 꺼뜨리기도 했다. 그러면 엄마는 소리를 지르며 우리를 혼낸다.

작은 접시에 촛불을 켜두고 5분 정도만 지나면 장난치기 적당할 만큼 초가 녹는다. 그 초를 들고 막냇동생의 눈에 비춰 보기도 하고, 심지를 자르다 불을 또 꺼뜨리기도 한다. 모인 초를 손이나 발등에 붓다가 뜨거워서 “악!” 소리를 지르면, 그 소리에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 날아온다. 그러고는 덜 혼나고 싶어 억울한 표정으로 죄가 없다고 어필하다가, 결국 웃으며 잠이 들었다.

이렇게 엄마에게 실컷 혼이 나 정신이 얼얼한데도, 그 시간을 금세 잊은 채 또다시 정전되는 날을 기다렸다. 이게 참 희한한 일이다. 아이의 마음이란 게 이런 걸까. 지금 돌아보면 나의 어린 시절도 귀여웠다.


추운 겨울밤, 가난한 소녀가 성냥을 팔며 거리를 헤매지만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는다. 추운 나머지 성냥을 하나씩 켜며 따뜻한 환상을 보게 되는데, 마지막에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만나 함께 하늘로 올라간다. 결국 소녀는 차가운 거리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는 이야기다. (안데르센 동화 『성냥팔이 소녀』 중에서)

어릴 적 읽었던 이 동화에서, 나는 작은 불꽃 하나가 얼마나 따뜻함을 주는지 알게 되었다. 눈밭에서 성냥을 팔아야 했던 소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무도 성냥을 사주지 않는 어둡고 추운 눈길에서, 가만히 성냥불을 켜는 소녀. 그 모습이 안쓰러웠고, 내가 곁에 가서 같이 있어 주고 싶었다.


이 동화와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또 있다. 이는 다양한 제목으로 소개되는데, 줄거리를 간단히 줄이면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왕이 세 아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이 방을 가득 채울 수 있는 물건을 사 오너라. 단, 너무 많은 돈을 쓰지는 말아라. 내 말에 잘 따르는 사람을 나의 후계자로 정하겠다."

아버지의 말에 첫째 아들은 건초를, 둘째 아들은 솜을 사 왔다. 하지만 방은 가득 채워지지 않는다. 여기에 비해 막내아들은 작은 초 하나를 사 와서 방 한가운데에 켜 두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초에서 퍼지는 불빛이 온 방을 환하게 가득 채운 것이다. 왕은 막내아들의 지혜에 감탄하며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막내아들의 새로운 발상에 놀랐다.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방을 가득 채운다고 하면 물건으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초 하나로 방을 채운다는 건 예상 밖이면서도 정확한 답이다. 이렇게 손으로 만질 수는 없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게 어느 공간 또는 누군가의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존재한다. 한 시절의 남녀를 뜨겁게 하고,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게 하는 '사랑'도 그러하다. 이런 사랑은 그 유형과 대상이 다양하고 절대적이지 않다. 내 눈에만 예쁘고 사랑스러운 상대가 있다. 이건 정말 다행한 일이다.


어쩌면 진정한 가치는 크기나 양보다는 지혜에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릴 적 정전이라는 다소 불편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촛불 하나로 행복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을 때는 ‘불장난하면 밤에 오줌을 싼다’라는 어른들의 겁박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에 초를 놓고 놀았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촛불잔치를 벌이던 우리. 네 명의 남매 중에서 위로 셋은 나이가 두세 살 차이가 난다. 하지만 막내는 부모님이 늦둥이로 낳으셔서 나이 차이가 10살 이상 난다. 그러니 우리 눈에는 거의 인형 같은 존재였다. 어둡게 정전이 된 집이 그 아이에게는 두려운 공간이었겠지. 무서움에 떠는 늦둥이 막냇동생이 울면 등을 손으로 토닥이고, 그 아이 앞에서 '까꿍'을 외치며 달랬다. 우리 네 명은 고픈 배를 부여잡고도 왜 그렇게 좋았는지.

우리는 촛불 하나로 행복했다. 이 장난으로 부모님이 계시지 않던 집안의 허전함을 달래고, 나의 유년 시절을 '행복'이라는 색으로 물들였다.

그 시절에는 촛불이 우리의 방을 채웠다면, 지금은 그 시간을 향한 그리움이 나를 채운다. 그래서일까.

‘보고 싶다. 그 시절.’

이전 17화그 섬에 내 어린 시절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