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노래가 나를 울렸다

2부. 밤, 나를 안다

by 윰글

무대 한가운데에 한 남자가 서 있다. 티셔츠에 청색 멜빵바지를 입은 그는, 음악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며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얼굴엔 오직 하나의 표정만이 남아 있었다. 긴장과 기대, 그 중간쯤의 표정이었다. 그의 어깨에는 기타가 메어 있고, 기타에서 뻗은 여러 갈래의 줄이 무대 곳곳으로 연결되어 있다. 열 개 남짓한 스탠드 마이크가 원을 이루며 그를 둘러싸고, 그 한가운데에 가수가 서 있다.

나는 문득, 이 무대가 그에게 어떤 의미일지 묻고 싶어졌다.

‘대학가요제.’

이 단어를 들으면 내 머릿속엔 35년 전, 이선희의 ‘J에게’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기름기 없이 부스스한 파마머리, 150cm 남짓한 작은 체구.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한순간에 모든 시선을 붙잡았다. 그때 내 입에서도 절로 ‘우와’ 하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 무대에 설레었다. 마치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그래서 내게 ‘대학가요제’란, 언제 들어도 그 시절의 설렘을 되살리는 단어다.

그런데 어느 날,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 ‘TV조선 대학가요제’라는 이름을 보았다. 그 순간, 나는 순식간에 30년 전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화면 속 대학가요제는 내 기억과는 달랐다. 예전엔 참가자들이 직접 쓴 곡으로 단 한 번의 무대에 모든 것을 걸었다. 한 번의 실수는 곧 탈락이었다. 그야말로 한 방의 세계였다.

지금은 다르다. ‘TV조선 대학가요제’에서는 기존 가수의 곡을 커버해 예선을 통과할 수 있고, 결승에 올라서야 비로소 자신의 곡을 부를 기회가 주어진다.


결승에 진출한 단 열 팀. 그중 마지막으로 이름이 불린 다섯 번째 참가자가 지금 무대에 서 있다. 얼마나 떨릴까. 그는 대회 초반부터 남달랐다. 무엇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였다. 그 안에는 묘한 집중과 결의가 있었다. 나는 그 눈빛에 끌렸다.

‘비장하다.’

그에게 어울리는 단어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야기가 있었다. 마치 자신의 삶을 노래로 풀어내는 듯했다. 직접 가사와 곡을 쓰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진심이 느껴졌다. 그의 노래를 듣는 순간, 나는 그가 지나온 시간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오늘은 결승 무대. 예선 때의 여유로운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그의 얼굴은 잔뜩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자작곡이 시작되기 직전,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빌었다.

‘제발, 잘해주세요.’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였다. 첫 소절이 흘러나오는 순간, 나는 이미 그의 노래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러게 그냥 그랬어.”

조용히 읊조리듯 시작한 노랫말. 그 속엔 한 소년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 소년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노래는 결국 누군가의 삶과 마음을 담는 일이다. 그래서 같은 곡이라도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온도를 지닌다. 만약 인생을 통찰하는 곡이라면, 그것은 나이 든 가수의 목소리에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의 이 무대는 달랐다. 그의 젊음, 불안, 성장의 흔적이 한 곡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음악은 경쟁이 아니다.’

‘삶의 한 조각이고, 누군가의 이야기다.’

그리고 진짜 감성은, 그 이야기 속에서 조용히 빛나는 알맹이 같은 것이다.



소년의 노래가 모두를 이끌어

여기까지 오게 만든 걸 거야

소년에게 낚였다 걸렸다

그 노래가 마음을 뺏었다.

소녀는 많이 울었던 것 같아

그도 이제 결심한 것 같아

사람들에게 들려줄 것 같아

그 사랑의 노래를

(보이스피싱 가사 중 발췌)



가사는 ‘멜로디’라는 캔버스 위에 그려진 삶의 언어다.

늦은 시간이라서일까. 그의 노래를 듣는데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무엇보다 그의 눈 속에는 지나온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경연을 준비하며 그가 견뎌냈을 외로움, 고독, 그리고 수없이 되뇌었을 의심과 다짐들이 보였다.

쉽게 얻어지는 일은 없다. 무언가에 인생을 걸고 달려가는 사람은 그만큼 더 큰 고통을 견딘다. 그러나 그 길의 끝에서 비로소 자신을 마주한다. 한 사람의 목표를 향한 여정은 인생의 산을 넘는 일과 같다. 웃고, 울고, 인내하며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 그가 이 무대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날을 버텨왔을까.

자신의 삶을 녹여 멜로디를 만들고, 진심을 담아 가사를 썼겠지.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무대에서 노래하고, 싸늘한 반응 속에서 마음이 다친 적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 길을 계속 가도 될까?’

그 의심과 좌절을 수없이 넘어 일어서며 걸어온 시간. 사람들은 그것을 ‘무명 시절’이라 부른다. 음악이란 얼마나 복잡하고 총체적인가. 그 모든 과정을 지나, 그는 지금 이 무대 위에 서 있다.

방청석 한가운데, 한 노부부가 애틋한 눈빛으로 무대를 바라본다. 특히 아내로 보이는 분은 노래가 시작되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울기 시작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그녀의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그 눈물을 보며 나는 궁금해졌다. 이들에게 무슨 사연이 있을까.

잠시 후, 사회자의 말로 알게 되었다. 무대 위의 가수는 그 노부부의 아들이었다.

그들이 아들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자랑스러움과 안쓰러움이 함께 묻어있었다. 아마 이 무대는 그에게도, 부모님에게도 단순한 경연이 아닌 삶의 한 장면일 것이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노래하는 걸 반대하셨어요.”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떨림이 섞여 있었다.

“제가 자취를 하면서 한동안 부모님을 못 뵈었어요. 많이 달라지셨네요.”

그가 무대 위에서 노부부를 바라보는 순간, 그들의 눈빛이 맞닿았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던 만큼, 그사이에는 묘한 전류가 흘렀다.

사회자가 농담처럼 물었다.

“이제는 반대 안 하시겠죠?”

어머니는 눈물 섞인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동작에 담긴 마음의 변화를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 아이가 진심으로 원하는 길이라면 그 길을 믿고 응원해 주세요.”


부모란 결국 자식을 믿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내가 응원해야 할까, 아니면 멈춰 세워야 할까.’

부모는 늘 그 갈림길 앞에 선다. 하지만 우리가 옳다고 믿는 길이 언제나 아이에게도 옳은 길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래서 결국, 부모는 아이의 길을 믿고, 그 길의 끝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잘할 거야. 그리고 잘될 거야.’

누구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이루기 위해선 반드시 어려움을 견뎌야 한다. 그 과정이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고, 목표를 향해 더 절실히 나아가게 한다. 무대 위의 그 남자는 그 모든 과정을 통과해 이 자리에 섰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님은 마침내 아들의 길을 인정하고, 그 길을 함께 걷기 시작했다. 그 순간은 그들에게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도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이제, 대상을 발표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노래가 끝났을 때, 내 눈가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나는 확신했다.

‘그가 대상을 받을 것이다.’

현장 점수는 이미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시청자 문자 투표가 더해져야 결정된다.

‘다른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어떻게 들었을까? 나처럼 울컥했을까? 혹시 결과가 달라질까?’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가 대상을 받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결과가 발표되었다. 2,000점 만점에 1,900점을 넘는 압도적인 점수. 그는 마침내 대상을 차지했다. 그가 무대 위에서 미소를 지을 때, 나도 모르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노래와 가사, 그리고 흘린 땀과 눈물이 정당하게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홀로 선 무대는 조금 쓸쓸해 보였지만, 오히려 그 쓸쓸함이 그의 자작곡과 어울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물었다.

‘만약 내가 심사위원이라면, 비슷한 실력을 갖춘 두 사람 중 누구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줄까?’

대답은 단 하나였다.

“가슴을 울리는 사람.”

감정의 결이 살아 있는 노래,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멜로디는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특히 평범한 삶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노래하는 사람의 곡은 전혀 평범하지 않다. 오늘 그가 부른 노래가 그랬다.

그는 자신을 ‘소년’이라 불렀다. 대회를 준비하며 흘린 눈물과 버틴 시간을, 그 ‘소년’의 이야기 속에 담아냈다. 그리고 오늘, 대중 앞에서 그 소년은 마침내 자신의 노래로 세상과 마주했다.


무대가 끝나고 불이 꺼진 뒤에도 그 여운은 오래 남았다. 누구나 인생의 시련을 겪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또 위로받고 싶어 한다. 평범하고 소소한 삶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위로가 된다. 지금 이 가수의 노래가 내 마음을 어루만지듯이.

그래서 나는 힘들 때 노래를 듣는다. 가사와 멜로디가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노래라면 더 좋다. 특히 간절함이 묻어나는 무대는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오늘이 그랬다.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다. 그의 감성이 앞으로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위로와 치유가 되길 바란다. 오늘 이 무대처럼, 그의 음악이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면, 그도, 우리도 행복할 것이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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