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빛, 마음의 방

2부. 밤, 나를 안다

by 윰글

“저희는 따로 내려갈게요.”

저녁 식사 중 연수 담당 매니저에게 그렇게 말했다. 서울에서의 1박 2일 연수가 오늘로 끝난다. 어제 아침 10시, 부산을 출발해 서울로 향했지만, 나는 서둘러 떠나기가 아쉬웠다. 낯익지만 낯선 거리, 오래전부터 그리워했던 공기, 그리고 쉽게 돌아오기 힘든 순간이 내 마음을 붙잡았다. 그래서 원래 알고 지냈던 두 분의 선배님과, 여기서 알게 된 후배 한 명, 그리고 나, 네 명은 서울에 남아 짧은 여행을 하기로 했다.

“어디로 갈까요?”

“국립중앙박물관 어때요?”

“좋아요.”


국립중앙박물관은 시간의 결을 담은 공간이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가 숨 쉬고, 세월의 이야기들이 벽과 전시물 사이에 쌓여 있다. 1945년 덕수궁에서 처음 문을 열었고, 수차례 자리를 옮긴 끝에 2005년 현재의 용산 부지에 자리 잡았다. 상설전시관과 특별전시관으로 나뉘고, 선사, 고대, 중근세, 서화, 조각공예, 아시아관, 그리고 ‘사유의 방’까지. 하나의 박물관이지만, 마치 작은 도시처럼 다양한 시간과 이야기가 공존한다.

택시를 타고 20분 남짓 달려 박물관에 도착했다. 입구에 서자 서울의 공기가 달랐다. 오늘은 두 개의 특별전이 열린다. 하나는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다른 하나는 19세기 말 비엔나의 예술 혁신을 다룬 전시였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작품들이 숨죽인 채 나를 기다리는 듯했다. 색과 선, 화면 속 인물들의 눈빛과 표정이 내 마음 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미술관이 익숙하지 않았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은 부산에서 기차로 3시간쯤 걸리는 먼 곳이었다. 다행히 아침 동행한 한 선배님이 미술을 전공하셨고, 오늘 전시를 여러 차례 관람했다고 하셨다. 그분이 도슨트가 되어 작품 하나하나를 조곤조곤 설명해주었다. 사전 지식과 관찰이 어우러진 설명 덕분에, 작품들이 마치 속삭이듯 내 마음 안으로 스며들었다.


전시장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어 있어서다. 안으로 들어서자, 고요 속에서도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졌다. 발걸음 소리조차 그림자처럼 번졌다. 전시는 큐레이터의 의도, 조명의 미묘한 차이, 배경 음악, 작품 배치에 따라 완전히 다른 풍경을 만든다. 오늘 전시는 고급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이 흐르며 전시 몰입감을 한층 깊게 만들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내 안에서 울림이 퍼졌다. 이런 순간이 오래 머물기를 바랐다.


두 번째 전시는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였다. 상형청자는 도자기 표면에 문양을 새기거나 음각으로 표현한 청자를 일컫는다. ‘상형’은 그림처럼 생긴 모양, ‘청자’는 고려 시대에 발달한 푸른빛 도자기를 의미한다. 조명 아래 반짝이는 도자기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신비로운 빛을 내뿜었다.

‘누가 만들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도자기를 빚었을까.’

나는 그들의 손끝과 마음을 천천히 읽으며 전시장을 걸었다. 도자기에 담긴 숨결과 정성을 느끼며, 잠시나마 제작자의 마음과 마주한 듯했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곳은 ‘사유의 방’이다. 상설 전시관 안에 자리한 이 공간은 불교의 철학과 미학을 품고 있었다. 입구를 들어서자 음악이 흐르고, 어두운 조명 아래 두 개의 불상이 서 있었다. 불상에 다가가려면 입구에서부터 50보쯤 걸어야 했다.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불상을 올려다보며, 나는 숨을 고르고 마음속 소망을 떠올렸다. 전시장 천정 테두리에서 비추는 조명은 내 마음을 감싸주었다.

두 불상 앞에 멈춰 섰다. 혼란스러우면서도 설렘이 섞인 내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 자신을 칭찬했다. 그리고 이곳을 찾은 모든 사람들이 평온하기를,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지기를 기도했다. 한 시간 넘게 박물관을 돌아본 후에도, 내 마음 속에 남은 여운은 ‘사유의 방’의 은은한 빛이었다.

‘이런 공간이 내게도 있으면 좋겠다.’


나는 종종 카페에 간다. 혼자 앉아 음악을 듣고, 커피 향을 음미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집에서는 늘 누군가와 함께해야 한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웃고 이야기하는 순간은 따뜻하고 소중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갈망한다. 철저히 내 안을 들여다보는 시간. 부족한 점과 사소한 생각들을 하나씩 마주하며, 고민하고 되돌아보면서 마음속 빈자리를 채운다. 때로는 자책이 몰려오고, 고민이 깊어지기도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거치며 나는 조금씩 나 자신을 이해한다.

그 시간을 거치면 마음이 채워지고, 감정의 결이 정리된다. 카페 작은 창밖으로 스쳐가는 빛과 그림자를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그리고 나 자신을 천천히 음미한다. 혼자의 시간이 만들어낸 사유의 공간은, 내 안에서 여전히 부드럽게 빛난다.


‘혼자가 되어야 한다.’

프랑스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는 인간 존재에 대해 논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혼자이며, 자기 자신과 마주해야 한다.” 자유와 책임, 실존의 고독을 강조하면서, 자기 자신과의 고독한 만남이 인간 삶에서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 역시 인간 존재론적 관점에서, 인간은 고독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고 이야기했다.

공부를 할 때도, 삶의 고민이 쌓일 때 누군가의 조언을 구한다. 하지만 최종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동원해 판단하고, 책임을 떠안는 순간,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된다. 그때 차분하게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후회 없는 선택이 가능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오늘 세 분의 동료와 박물관을 함께 걸었지만, 작품 앞에서는 철저히 혼자였다. 마주한 작품의 세계를 상상하고, 내 안에서 비슷한 감성을 찾아 재구성한다. 그러면서 전시장을 나서기 전과는 달라진 나를 발견한다. 그 과정이 좋다. 혼자가 되어야만 느낄 수 있는 몰입과 사유, 그리고 자기 이해. 그것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전시가 끝난 뒤, 우리는 박물관 내부 카페에 들렀다. 새로 알게 된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은 어색하지 않았다. 같은 주제로 움직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누군가는 결혼 이야기를, 또 누군가는 최근 근황을 털어놓았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그 시간은 즐거움이다. 전시와 이어진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느낌을 나누며 마음의 거리를 좁혔다.

“전 사유의 방이 제일 좋았어요.”

“저도 그랬어요.”

아메리카노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정신이 맑아졌다. 연수를 위해 떠난 여행이었지만, 박물관을 찾은 선택은 만족스러웠다. 전시의 여운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나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서울역으로 향하는 택시 안, 창밖 불빛이 스쳐 지나갔다.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고, 나는 오늘이라는 하루를 마음에 새겼다.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그리운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웃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행복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내 안에 감성을 채운 나 자신에게 칭찬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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