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좋았던 건, 사실이었다.

'나를 살피는 시간'의 중요성

by 감격

가끔 그리워지는 날


여름이 오기 전, 남편과 아이들이

2박 3일 여행을 떠났던 날이 떠오른다.

나는 오랜만에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영 어색했다.

늘 누군가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고,

필요에 응답하던 일상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채 몇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내 몸과 마음은 가벼워졌다.


식사 시간도, 잠자는 시간도

오로지 내 기준에 맞춰 흘렀다.

서랍 정리를 시작으로 미뤄둔 일들을 하나씩 꺼냈고,

멈춰있던 글을 쓰기도 했다.

핸드폰으로 짧은 영상을 넘기던 내가

아주 오랜만에 영화 한 편을 끝까지 보기도 했다.


이틀 동안 나는,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아내도 아닌 '나 자신'으로 살았다.

그리고 그 시간이 나를 얼마나 회복시켰는지

이 글을 쓰는 지금 다시금 확실히 깨달았다.



혼자라는 시간이 좋았던 이유


'가족이 소중하다'는 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그 말에 자신의 시간을 무기한 양도하곤 한다.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이기적인 욕망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혼자 있으면서 오히려 자책이 줄었다.


"내가 이래도 괜찮구나. 이렇게 평온했던 적이 있었지"


그 짧은 2박 3일간의 내 모습은 예전의 나를 닮아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가족이라는 이름아래

'나'라는 존재를 보류해 왔는지 모른다.

좋은 부모, 좋은 배우자가 되기 위해 내 우선순위를 매번 조정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나'라는 존재는 감각조차 희미해졌던 게 아닐까.



나를 회복하는 방식


심리학자 도널드 위니컷의 "충분히 좋은 부모"이론에 따르면

완벽한 양육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기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 말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시간'이

곧 아이에게도, 배우자에게도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스스로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2박 3일 동안 나는 그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내가 나를 받아들이고 연결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나에게 관대해졌고,

조금 덜 조급해졌으며,

조금 더 '지금의 나'를 인정할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방이 필요하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말했다.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선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그 방은 단지 공간을 뜻하지 않는다.

정서적 독립성과 시간적 자율성,

즉,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의미한다.


나 역시 그 방의 존재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방이

곧 나를 지키는 가장 안전한 경계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시, 일상으로


이 글을 쓰는 지금, 가족들은 돌아왔고

나 역시 분주한 일상을 이어온 지 오래다.

그러나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만의 시간'이 삶에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어쩌면 대부분의 시간을

누구의 엄마, 아내, 딸로 살겠지만,

그 사이사이 "나로서 존재하는 시간'을 끼워 넣으려고 한다.


그건 내가 내 가족을 사랑하듯이

나 자신도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혼자라는 시간은 사치가 아니라 회복이었다.

오히려 살아있음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가끔 그 시간이 그립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혼자'가 필수는 아니다.

일상 속 작은 틈으로도 충분히 나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 일어난 30분 동안의 명상,

누구의 방해도 없는 글쓰기 시간처럼

그 시간은 온전히 내가 나로 숨 쉬는 시간이며,

세상의 요구가 아닌 내 마음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다.


혼자라는 시간은 결국,

나 자신을 응원하는 연습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