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잇는 단어, 나를 만드는 언어

언어를 통해 확장되는 자아

by 감격

나를 이어주는 단어들


누구에게나 삶을 이어주는 단어가 있다.

그 단어는 인생의 어느 고비에서 불현듯 등장해 우리를 무너짐에서 붙잡아준다.


나에게는 두 단어가 오랫동안 그랬다.

"얼마만큼의 시간", "어쩌면"


가장 아프던 시절,

"얼마만큼의 시간"은 절망에도 끝이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그리고 "어쩌면"은 불가능에 가로막혀도 가능성을 향한 미세한 틈을 남겨주었다.


그 두 단어는 아주 오랫동안, 내 삶의 숨구멍이 되어주었다.



기억의 그릇


사람은 단어로 세상을 이해하곤 한다.

그래서 같은 단어일지라도 각자의 해석은 너무나 다르다.


그래서 조금 과장하자면, 단어 하나는 그 자체로 감정, 기억, 믿음을 담는 '그릇'이다.


언어를 세계를 해석하는 '렌즈'라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가 어떤 단어로 세상을 부르는가가 곧 우리의 사고방식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해야 한다"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삶을 '의무의 연속'으로 경험한다.

반면 "하고 싶다"를 자주 말하는 사람은 삶을 '의지의 확장'으로 느낀다.


단어가 다르면 감정의 결도 달라진다.



의식의 필터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를 프레이밍 효과라고 부른다.

같은 사실도 '생존율 90%'라고 말할 때와 사망률 10%'라 말할 때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작은 표현 하나가 인식을 바꾼다.

결국 우리가 사용하는 어가 생각의 방향과 감정의 질을 결정한다.


사용하는 단어가 달라지면 생각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면 삶이 달라진다는 것.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단어는 마음의 조각이고, 언어는 그 조각들이 만든 사고의 틀이다.

우리가 쓰는 말은 곧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된다.


나를 바꾸는 단어


시간이 지나,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두 단어를 만났다.


"다정한" 그리고 "감격"


다정함은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를 대하는 태도이고,

감격은 작은 순간에도 흔들리는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두 단어의 힘은 생각보다 컸다.

하루의 온도와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결과로만 자신을 평가하고 자주 비하했지만,

지금은 애썼던 과정을 인정하고

모든 것에 감사하며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


흔히들 "좋은 글은 좋은 태도에서 나온다"라고 한다.

삶도 마찬가지다.

좋은 태도는 좋은 단어에서 비롯된다.


'비판' 대신 '이해',

'불안' 대신 '관찰',

'부족' 대신 '과정'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삶이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있다.



마음의 근육 키우기


우리는 매일 수백 개의 단어로 자신을 규정한다.

"나는 부족해"

""나는 아직 멀었어"

이런 말들이 쌓여 자존감의 모양을 만든다.


그래서 나는 하루를 마무리할 때,

감사로 감격한 순간을 떠올린다.

오늘의 감격이 내일의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단어는 마음의 근육과 같다.

반복해서 사용할수록 단단해지고, 우리의 사고도 자란다.


오늘, 나를 살린 단어는 무엇일까?

그 단어가 나를 위로하고 있는가? 아니면 조금씩 갉어먹고 있는가?


잠시 멈춰, 나를 살리는 단어 하나를 찾아보자.

그 단어가 남은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완전히 달라지게 할지도 모른다.


단어를 바꾸면, 세상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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