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법을 잃어버린 나에게

웃음이라는 작은 균열

by 감격

무표정해진 나에게


무심코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눈썹도 입꼬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표정이 사라졌다.


'이렇게까지 무표정 했나?' 싶을 정도로, 내 얼굴은 감정을 감춘 채 굳어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예전의 나를 떠올렸다.

드라마 한 편에도 눈물을 쏟고 아이가 부르는 노래 한 소절에도 웃음을 터뜨리던 사람이었다.

친한 지인들은 다 인정할 정도로 감성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웃고 싶어도 웃기 어렵다. 마음이 말랑해지지 않는다.



웃음을 잃은 게 아니라 멈춰 선 걸까


심리학자 폴 에크만은 인간의 기본 감정 중 하나로 '기쁨'을 꼽는다.

흥미로운 것은, 얼굴 근육이 웃는 형태로 움직이기만 해도, 뇌는 이를 기쁜 상태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는 감정이 표정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표정이 감정을 유도할 수 있다는 '페이셜 피드백 가설(Facial Feedback Hypothesis)'로 설명된다.

다시 말해, 마음이 먼저가 아니라 얼굴이 먼저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왜 나는 웃지 못할까?

가장 큰 이유는 내 마음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감정을 억누르고, 웃음을 참고, 마음을 접은 시간이 쌓였던 건 아닐까.

엄마니까, 어른이니까, 하는 책임감이 웃음을 덮어두게 만들었다.


그러니 아이들이 어릴 적 찍은 동영상 속 내 밝은 목소리는 낯설 수 밖에..

그걸 듣다 보면 무표정한 내 얼굴이 더 선명해지고, 마음이 울적해진다.


아이들은 분명 지금의 내 얼굴을 더 오래 기억할 것이다.

웃지 않는 엄마, 덤덤한 반응,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정말, 더 웃고 싶다.




아주 조용한 순간에서 시작되는 웃음


다행히, 나는 내가 웃지 않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오히려 더 작은 순간들에서 작게 미소 짓는 나를 찾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다 같이 자려고 누웠던 어느 날 밤, 아이가 무심코 던진 엉뚱한 말장난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올 때,

오래전 즐겨 듣던 노래가 흘러나오며 그 시절 내가 잠시 돌아올 때,

간지러움을 타는 것을 눈치챈 아이가 일부러 뽀뽀를 해댈 때,

찰나의 웃음 속에서 "나 아직 웃을 수 있구나, 웃고 싶었구나"라는 목소리를 듣는다.


억지로 웃어보려 애쓰는 대신, 그런 소소한 순간들을 수집하기로 했다.

내 마음이 다시 말랑해지며 마음껏 웃음으로 발산하길 기다린다.




충분히 괜찮다


무표정한 내가 싫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나를 지키기 위해 견뎌서 살아낸 얼굴일지 모르니까.

하지만 팍팍한 세상에 즐거움도 웃음도 없이 살기엔 너무 답답하다.


웃음이라는 작은 균열로 틈을 주고 싶다.

아이들이 기억할 나의 얼굴이, 조금 더 부드럽고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


매일 아침 거울을 향해 하이파이브와 입꼬리를 올리는 나,

억지여도 괜찮다. 웃어야 웃을 이유도 생길 테니까.


매일이라는 삶 속에서 웃을 일이 없다고 해도,

이유 없이 속없는 사람처럼 웃어보면 어떨까. 웃는 얼굴이 제일 잘 어울리는 우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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