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명상, 하는 명상

명상과의 재회, 삶이 되다.

by 감격

나는 명상을 말했지만, 명상을 하지 않았다.

명상과 나는 일로 만난 사이였다.

펜데믹으로 온라인 교육이 활성화된 덕이 컸다.

명상 지도자들 사이에서 그들의 수업이 원활하도록 돕고

때로는 그분들이 쓰는 단어를 흉내 내곤 했다.


그렇게 나는 명상을 "해야 하는 일"로 배웠다.

그 속에서 감동을 느끼기도 했고 깨달음을 전하기도 했다.


어쩐지 내 안의 평화는 찾기 어려웠지만 평화로워 보여야 했다.

명상의 현장에 있었지만 깊숙이 스며들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명상을 알고만 있었다.

'알아차림', '호흡', '마음 챙김'이라는 단어들은 내 삶에 온전한 문장이 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저 안다는 것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나는 명상의 아름다움을 보기 전에 설명하려 했던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 명상과 멀어진 어느 날, 나는 다시 명상을 찾았다.

이번엔 달랐다. 누군가를 위한 일이 아닌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더 이상 부담이 없었다.

얼마나 오래 앉아야 하는지, 제대로 하고 있는지


그날그날 심호흡만으로, 때론 필사로, 조용히 숨을 바라본다.


물론 처음에는 숨을 쉬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다.

1분도 되지 않아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으로 가득 찼다.

'이게 맞나?' 싶은 물음표가 계속 튀어나왔다.

하지만 나는 그냥 앉아 있었다. 그저 숨만 바라봤다.


하루하루 아주 조금씩 나아졌다.

내가 집착하는 것들, 내가 이름표 붙여놓은 것들을

알아차리면서 그대로 바라보는 것,

이 단순한 일이 나를 살리고 있다.


불교에서는 이를 사띠,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한다.

억누르거나 붙잡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태도다.

이제야 아주 어렴풋하게 흉내를 내고 있다.


과거 내가 흉내 낸 문장들은 억지로 꾸며낸 단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내 호흡 그 자체로 고요함을 느낀다.


그제야 알았다.

명상은 머리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스며드는 것이었다.


여전히 나는 명상을 잘 모른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저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할 뿐이다.


나에게 명상은 완성된 길이 아니다.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아가게 하는 거울이다.

그리고 여전히 알아차리는 중이다.

이후에 무엇이 있을지는, 그때가 되면 또 알게 되지 않을까.


심호흡을 하다가 눈을 뜬 오후,

유난히 비추던 빛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 순간을 글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