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짓는 마음씨를 키우는 중입니다.

행운을 보듬는 연습

by 감격

두 달여 전, 아이들과 체험을 하러 간 날이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장님이 먼저 환하게 웃으며 맞이해 주셨다.

그 짧은 인사에 시큰둥했던 내 마음이 풀어졌다.

낯선 공간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좋았다.


오가며 마주치던 사장님은 나에게 작은 화분을 하나 건넸다.


"이건 행운을 상징해요"


푸른 잎이 가지런히 뻗은 스파트필름이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이 가는 화분이었다.

식물을 잘 키우지 못하는 나였지만,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마웠다.


어쩌면 사장님이 내게 준 화분은

"당신의 삶에도 행운이 머물기를"바라는 작은 응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이런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며 웃었다.

늘 내 곁에 있다 보면 이런 일을 자주 겪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단순한 운이 아니라 '마음을 배우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내가 선물을 받는 이유는

보듬고 나누는 것을 배우기 위함이 아닐까.


보듬는 마음이 커지면

그 마음이 곧 행운의 통로가 되고 복이 머물 자리를 만든다.


행운은 그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수백 번의 보듬는 마음씨에서 피어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진동이다.


누군가를 따뜻하게 바라볼 때, 나 역시 그 따뜻함 안에 함께하는 것처럼.

그렇게 마음을 열면 세상은 그 틈으로 조용히 들어오는 것이다.


그날 아이들과 다육이를 함께 데려왔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다온이", "복이", "다독이, "수수", "활짝이"

모든 복이 머무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마음도 복을 짓는 마음이어야 했다.

이름을 붙이는 일은, 존재를 인정하고 마음을 다짐하는 일이었다.


아이들이 "수수야 잘 잤어?"라며 인사하며 까르르 웃기도 했다.

다독이 녀석은 너무 물을 준 탓에 결국 보내줘야 했지만...

그 작은 생명 속에서도 희로애락이 있었다.


우리에게 행운은 거저 오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마음씨를 통해 조금씩 자랄 뿐이다.

화분을 받은 사실보다도, 그 화분이 오기까지의 모든 인연과 선한 마음

그 모든 것이 이미 행운이었고 복이었다.


그래서 나는 안다.

행운을 느낀다는 것은 곧 나의 일상을 보듬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완벽하지 않은 세상이지만 보듬는 마음만은 완전할 수 있다.

재고 따지고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선물임을 알고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행운이 아닐까.


내 곁에 화분처럼

내 삶의 순간마다 이름을 붙이고 마음을 쓰다듬자.

그것이 나를 지탱하는 복이 될 테니까.


설령 언젠가 이 화분이 시들어가더라도,

나는 다시 마음씨를 뿌릴 것이다.

행운은 잎의 푸르름이 아닌, 그 마음씨에서 자라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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