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함의 회복
우리는 습관처럼 말한다. 자라면서 순수함을 잃어버렸다고.
하지만 정말 그 순수함을 잃은 걸까?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잃은 것이 아니라,
고이 접어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
창문에 빗방울이 흐르면
"엄마, 저 물방울이랑 저 물방울이 경주해"하며 환호성을 지른다.
길에서 주운 돌멩이 하나에도 눈이 번쩍이고
이상한 표정 하나면 이유 없이 까르르 웃는다.
누가 어느 나라 사람이든 상관없다.
그냥 같이 놀 수 있으면 모두가 친구다.
문득 그 모습을 보다가 생각했다. 나도 저럴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나에게는 이유 없는 믿음이 있었다.
꽃이 피면 그냥 예뻤고, 비가 오면 이유 없이 손을 내밀었다.
세상은 계산보다 느낌으로 먼저 다가왔다.
그 순수함은 세상을 몰라서라기보다, 세상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힘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중년이 된 지금 나는 안다.
세상에는 거짓이 있고, 사람은 변하며,
노력에도 불확실함이 따른다는 것을.
프리랜서로 일하며 아이를 키우기에
나는 조심하고, 의심하고, 한 발짝 물러서서 가늠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렇게 현명해졌는데, 그때보다 더 많이 행복하다 말하기 어렵다.
며칠 전이었다.
저녁 준비를 하다가 문득 바라본 창문 밖 하늘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해가 지는 그 시간의 하늘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순간 생각했다."이거 같이 보면 좋겠다!"
SNS에 글을 올렸다. 지금 하늘을 봐보라고.
나와 통했는지 하늘 사진을 찍은 친구가 있었다.
"지금 하늘이 너무 이뻐"
"덕분에 하늘을 봤어"
"눈으로 사진 찍었어!"
덕분에 우리는 아이처럼 함께 하늘을 바라보고 또 나누었다.
그 순간이 좋았다.
사진은 못 찍었지만 우리는 같은 하늘을 보고 있었다.
함께 감탄하고 있었다.
순수함은 무지가 아니었다. 열린 마음이었다.
판단보다 호기심이 앞서고, 계산보다 느낌이 먼저인 상태.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손 내밀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순수였다.
부모로서 나는 그동안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까?'만 고민했었다.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키워줄까만.
그런데 아이들은 나에게 와준 순간부터 매 순간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
생명에 대한 신비, 탄생에 대한 기쁨,
함께 울고 웃고 감동한 모든 처음의 것들.
지루함에서 찾아내는 환호,
사소한 것에 웃는 법,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는 법, 등등
아이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은
어쩌면 어른이라는 책임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졌다는 신호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나는 연습 중이다.
한 번씩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차를 마실 때 온전히 그 온도와 향을 음미하는 것,
아이의 말에 최대한 빠르게 지금 바로 보는 것.
매일 다짐하고 연습해도 늘 부족하겠지만,
덕분인지 아주 가끔 웃음이 빵 터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느낀다.
맞아, 나 이렇게 잘 웃고 울었었는데.
이게 나였지.
아이들에게 해줄 것만을 고민하기보다
지금 누려야 할 것들을 함께 누려보고 싶다.
아이의 웃음에 덩달아 웃고,
아이의 감탄에 나도 박수를 치고,
그들의 순수함을 지켜주며 나 또한 배우는 것.
그렇게 이미 알면서도 다시 느끼기를 선택하고 싶다.
어른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내 안의 순수를 완전히 버릴 필요는 없다.
어쩌면 인생의 진짜 지혜는 '어른이 되는 법'이 아니라
다시 아이로 돌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것이 아닌 잊어버린 것을,
버린 것이 아니라 고이 묻어둔 것을 꺼내는 일.
오늘도 아이가 이야기보따리를 꺼내 놓는다.
이제, 마음껏 웃을 시간이다.
순수는 돌아올 수 있다.
우리가 그것을 다시 꺼낼 용기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