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고백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는 질문이 있다.
"왜 나는 나아가지 못하는 거지?"
늘 더 잘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움직이는 순간이 되면 이상하게 몸과 마음이 굳는다.
멈춰 선 나를 바라보며 또 스스로를 탓하고 있다.
게으른 건가? 초보자여서?
인정받았던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까 두려워서?
혹은, 아직도 불쌍한 나의 모습 속에 숨어 있고 싶은 걸까?
꼬리를 무는 질문들은 마치 오래된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니며
때로는 냉혹한 자기비판이 되고,
때로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의 변명으로 변한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나는 나아가지 않으려는 걸까?
아니면, 너무 나아가고 싶어서 불안한 걸까?
우리는 흔히 멈춤을 의지력 부족이라 쉽게 단정한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과거의 경험, 특히 수치심이나 실패,
혹은 강한 인정의 순간이 깊게 새겨지면
비슷한 상황 앞에서 몸이 먼저 움츠러든다고 한다고.
나는 이렇게 정리해보고 싶다.
계속 주저하는 이유는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기억이 깊어서라고.
나도 그랬다.
예전에 인정받았던 기억,
누군가가 나를 칭찬해 주던 눈빛,
'잘한다'는 말 한마디가 만들어준 기대치.
그 모든 것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다시 시도했다가 그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 인정이 사실 '운'이었다는 게 드러나면 어떡하지?
그때의 내가 '최고치'였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그다음 나는 무엇으로 나를 붙잡고 살아야 하지?
두려움은 실패가 아닌,
한 번 빛났던 나를 다시는 만나지 못할까 봐 생긴 것이었다.
그러니 몸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나아가지 못한 게 아니라, 나를 지키느라 애쓰고 있던 것이다.
사실, 나는 '나답게 잘되고 싶은 사람'이 아닐까.
나는 언제나 더 잘되고 싶었다.
더 성장하고 싶고,
더 배우고 싶고,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도 지키고 싶었다.
익숙한 패턴 속에서 얻었던 작은 안전감,
그 안전감마저 무너질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흔들렸다.
'성장하고 싶은 나'와 '지금의 나를 잃고 싶지 않은 나'가
늘 부딪히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혼자 자괴감에 빠지는 순간에도,
나는 이미 변화의 문턱에 와 있었다.
하루 종일 나를 흔든 자괴감이 짙어진 밤,
이 글을 쓰며 질책하지만 이내 또 위로하기를 반복한다.
내가 정말 변화를 포기했다면 자괴감조차 느끼지 않았을 테니까.
여전히 마음은 이렇게 시끄럽다.
부끄럽고, 초조하고, 짜증 나고, 서글프다.
그 모든 소란은 역설로 말한다.
"나는 여전히 나아가고 싶은 사람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애벌레가 멈춰서 멈춰 고치 속으로 들어가듯,
변화의 초입에는 가장 큰 고요와 가장 큰 통증이 함께 찾아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고요한 웅크림 속에서
사실은 새로운 날개가 조용히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의 정적도 어쩌면,
날개를 펼치기 직전의 마지막 정적일지 모른다.
그러니 나 또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
가장 깊은 고요를 통과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나는 이제 알고 있다.
거대한 계획이나 완벽한 마음가짐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님을.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키는 것은 언제나 아주 작은 행동이었다.
나에게 다정한 한마디를 건네는 일,
따뜻한 차 한잔을 깊게 들이마시는 일,
호흡하며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
아주 작은 움직임이 내 마음을 다독인다.
"나는 멈추는 사람이 아니라, 움직이며 다시 살아나는 사람이다"
나아가지 못하는 나를 조금은 용서해도 좋다고,
멈춘 나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더 나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웅크리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조금씩,
나를 살아있게 하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