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
나는 한동안 응원이란, 반드시 '결과'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부담 속에 있었다.
내가 응원했는데 잘되지 않으면 괜히 내가 무책임해지는 것 같았고,
응원을 받으면 반드시 무언가를 해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잘되길 바라는 마음'보다
'지켜봐 주는 마음'이 더 용기 있다는 것을 배우는데 참 오래 걸렸다.
사람들은 종종 응원을 질투나 시기와 혼동한다.
남의 성과를 바라면서도 막상 잘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릿해지고,
누군가의 응원을 받을 때조차 그 마음을 부담으로 느낀다.
나 역시 그 오해 속에서 상처받은 적이 있다.
나는 순수하게 부러웠고, 그만큼 응원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 마음이 시기로 해석될 때, 내 진심은 더 자주 작아지곤 했다.
다행히 지금은,
부러움이 숨겨야 할 감정이 아니라 존중의 또 다른 얼굴임을 안다.
약 12년 전쯤이었다.
대학교 취업 상담실에서 한 학생을 만났다.
모두가 그의 꿈을 반대하고 있었다. 그는 충분히 잘 해내고 있었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그저 오래, 가만히 들어주었다.
그 학생은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한참 뒤에 진정한 학생은
"메일이라도 좋으니 말하고 싶을 때 연락드려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당시 나는 개인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었지만, 몇 년간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나는 멋진 멘토가 아니었지만, 그 학생은 내 예상보다도 훨씬 멋지게 성장해 갔다.
어느 순간 '이제 내가 없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연락은 자연스럽게 끊겼다.
섭섭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뻤다.
내 응원보다 더 멀리, 더 자기 다운 길로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그때 느꼈다.
사실 응원에는 대단한 힘이 없다는 것을.
해내는 것은 언제나 도전하는 사람의 몫이다.
응원은 그저 연료가 될 수 있고 아무 의미 없이 스쳐갈 수도 있다.
받는 사람이 연료로 쓰기를 선택할 때에만 비로소 힘이 된다.
즉, 응원은 나의 책임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책임을 믿어주는 일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나 자신을 잘 응원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나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누군가를 응원할 때마다 나에 대한 의심이 조금씩 사라졌다.
그 사람이 해내는 것을 보고 기뻐할 수 있다는 건,
나 역시 그 가능성에서 완전히 배제된 존재는 아니라는 뜻이었으니까.
그래서 내 응원은 판단이 아니라 길을 찾는 지도가 되었다.
앞서 끌고 가지도 않고, 뒤에서 밀지도 않는다.
그저 같은 방향을 보고 함께 서 있을 뿐이다.
아이들이 처음 걸음마를 뗄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손을 잡아주고, 웃어주고, 넘어지면 안아주며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응원도 마찬가지다.
대신 살아주지 않는 일,
대신 결정하지 않는 일,
대신 해내주지 않는 일,
그 자리를 비워두는 것, 나는 오늘도 그 빈자리를 지키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이 편이 남기는 정리]
응원은 누군가의 성과를 대신 만들어주는 거창한 힘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자신의 연료를 발견할 때까지 그 몫을 비워두고 기다려주는 다정함이다.
[이 편이 남기는 질문]
당신은 오늘, 누군가 혹은 자신을 위해 그저 그 자리를 비워둔 채 믿음으로 지켜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