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나의 세계는 5년 전 그날 이후로, 눈에 띄게 좁아졌다.
남들은 당연하게 누리는 이동의 자유가 나에게는 여전히 버겁다.
첫아이를 낳고 한동안 이유 없이 차 타기가 무서웠다.
그 불안이 겨우 잊혀 가던 어느 날,
나를 제외한 남편과 아이들, 친정엄마가 탄 차가 사고로 폐차된 후,
나는 더욱 운전대를 멀리하게 되었다.
내가 운전해서 난 사고도 아니었지만,
그날의 파편은 여전히 핸들을 잡는 순간 내 심장을 지른다.
아주 가끔, 예측 가능한 반경 안에서만 손에 꼽을 정도로 운전을 하는 이유다.
사고 알람 문자에 차에 간단한 문제가 생긴 줄 알았다.
겨우 연결된 수화기 너머로 남편은 말했다.
"구급차를 불렀어. 이따 연락할게"
현장으로 향하던 아빠의 소식이 닿기 전까지 그 몇십 분,
그 공백은 내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진공상태였다.
생각도, 기도도,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소중한 존재들이 한꺼번에 지워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내 온몸을 마비시켰다.
그날 이후, 불안은 내 삶의 더 큰 배경음악이 되었다.
막연한 전쟁의 기운도, 화산 폭발의 가능성을 논하는 영상도,
가까이에서 들리는 아이의 작은 기침 소리조차도
나에게는 당장 들이닥칠 재난처럼 다가왔다.
불안은 성실하게 내게 속삭였다.
너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특히 즐거운 순간일수록
불안은 더 큰 파도가 되어 밀려와 나를 덮쳤다.
오랫동안 나 자신을 탓했다.
왜 나는 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왜 이렇게 나약하게 구는지를 자책했다.
하지만, 문득 깨달았다.
오히려 혼자일 때는 이토록 무섭지 않았다.
나에게 지키고 싶은 대상이 생기고,
내 삶에 가장 소중한 이들이 자리 잡은 뒤에야
불안은 비로소 더 큰 힘을 갖게 되었다.
결국 불안은 내가 이 삶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내 곁의 사람들을 얼마나 잃고 싶지 않은지를 증명하는
가장 어둡고 정직한 방식으로 드러내는 그림자였다.
운전대를 잡지 못하는 나의 비겁함은 사실,
그들을 다시는 잃고 싶지 않다는 내 사랑의 지독한 증명이었다.
나의 세계가 좁아진 것은,
그만큼 내 삶에 들어온 소중한 사람들의 부피가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내일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나는 알 방법이 없다.
하지만 내가 분명하게 아는 것은,
아무리 걱정해도 내 손을 떠난 것이라면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에 집중하는 것이
불안이라는 거대한 파도 뒤에서 내가 균형을 잡는 방법이다.
불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것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짊어져야 할 사랑의 무게추일뿐이다.
[이 편이 남기는 정리]
“불안은 내가 이 삶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정직하고도 아픈 이름이다.”
[이 편이 남기는 질문]
“당신이 포기하거나 줄여버린 삶의 반경 뒤에,
사실은 너무나 사랑해서 지켜내고 싶은 것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