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는 나를 완성하는
가장 예리한 도구다.

비교

by 감격

나는 오랫동안 비교를 나의 결핍을 확인하는 잔인한 도구로 사용했다.

남들이 빛나는 순간을 훔쳐보며 나의 평범함을 자책했고,

그럴수록 내 안의 세계는 빛을 잃고 한없이 좁아졌다.


살아오며 나는 특별히 사랑받는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만큼 살기 위해 끊임없이 애를 써야 하는 '보통의 존재'였다.

가끔은 내가 빛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지만,

곧이어 마주하는 타인의 광채 앞에서 나의 빛은 무색해졌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열심히 살고 있다는 자부심은 비교라는 파도 앞에서 힘없이 무너졌고,

나는 매일 같이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작아져 갔다.


그 무너진 잔해 속에서 나는 나를 천천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지금 어떤 물속에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열심히만 사는 것은

물고기가 하늘을 날겠다고 파닥거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아빠 앞에 무릎 꿇고 앉아 "꿈이 뭐냐"는 질문을 들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회사원"이라고 답했다.

눈에 띄지 않게, 비교당하지 않으며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선택이었다.


그러기에 그 대답은 진짜 내가 원한 삶이 아니라

비교에서 도망치기 위해 선택한

가장 안전한 피난처임을 인정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인지'와

그 모습조차 나임을 받아들이는 '수용'은

그만큼 지독하고 외로운 과정이었다.


여전히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때로는 비교의 파도 앞에서 뒤로 물러서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비교의 통증은 나를 처벌하는 채찍이 아니라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서늘한 감각이다.


타인이라는 거울은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주지 못하지만,

내가 무엇이 '아닌지'는 더 선명하게 알려준다.


그래서 비교는 남보다 우위에 서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타인이라는 배경을 통해 오직 나만이 가진 고유한 실루엣을 찾아내는

'식별'의 과정일 뿐이다.


내가 날지 못하는 물고기임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나는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비교란,

타인이라는 광활한 바다 위에서

'나'라는 유일한 섬의 해안선을 그려나가는 작업이다.


남의 속도에 발맞추기 위해 나를 깎아내는 것이 아닌,

비교라는 예리한 칼날로 내 삼의 불필요한 기대를 덜 어내며,

오직 나답게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조각하려 한다.



비교는 나를 무너뜨리는 형벌이 아니다.
나를 타인처럼 귀하게 여기며,
비로소 나라는 존재의 '고유함'을 조각하는
가장 예리한 도구다



[이 편이 남기는 정리]

비교는 나를 깎아내리는 일이 아니라, 나만의 모습으로 드러내는 일이다.


[이 편이 남기는 질문]

나는 비교를 통해 나를 깎아내리고 싶은가,

아니면 나를 더 정확히 알고 싶은가?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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