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이십여 년 전, 영화 <선물>을 보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타인을 웃겨야만 하는 코미디언 남편이
아내의 마지막 길 앞에서 분장을 한 채
무너져 내리던 그 역설적인 비극.
그때의 나에게 슬픔이란,
잘 짜인 서사 안에서 한바탕 쏟아내는
뜨거운 눈물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삶이 팍팍해지고
마음이 화로 가득 찼을 때,
나는 더 이상 내게 슬픔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고 믿었다.
감정이 메말라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상태를
슬픔이 사라진 것이라 착각하며 살았던 것이다.
글을 쓰며 다시 되돌아 질문해 본다.
마음이 짓눌리도록 무거운 눈물 때문에
혼자 엎드려 조용히 울 수밖에 없는
그 진짜 슬픔의 심연을, 나는 정말 겪어 보았을까.
나는 아직 그 깊이를 다 모르는 게 아닐까.
아이들에게 슬픔이 무엇인지 물으니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 천진한 눈망울을 보며 이기적인 바람을 가져본다.
너희는 이 깊고 무거운 감정을 아주 나중에,
아주 천천히 알게 되기를.
삶이 가진 찬란함의 무게가
때로는 이토록 눅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최대한 늦게 깨닫기를 말이다.
가만히 돌아보니 나의 슬픔은 늘 '이별'의 얼굴로 내 곁을 찾아왔다.
췌장암으로 투병하시던 큰아버지가 끝내 세상을 떠나시던 장례식장,
"하늘나라는 어떻게 가는 거야?"라고 묻던
6살 조카의 시리게 맑은 순수함을 마주했을 때.
한 시대를 공유했던 유명인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들었을 때.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는 마주할 수 없는 '과거의 나'와 '찬란했던 시절인연'들을 떠올릴 때.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존재이기에,
슬픔은 결코 떼어낼 수 없는 그림자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나는 수많은 슬픔을 마주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슬픔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그 뒤편에는 반드시 행복과 사랑,
그리고 찬란했던 순간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안다.
슬픔이 깊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무언가를 뜨겁게 사랑했다는 증거이며,
슬픔에 아프다는 것은 그 존재가 내 삶에서 눈부시게 빛났다는 기록이다.
그러니 슬픔은 비극이 아니라,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찬란한 생을 지나왔다는
가장 인간적인 증명일지도 모르겠다.
[이 편이 남기는 정리]
슬픔은 삶이 비어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한때 그 자리에 찬란한 사랑이 존재했다는 기록이다.
[이 편이 남기는 질문]
그렇다면 나는, 다시 슬퍼질 수 있을 만큼
누군가를, 어떤 시간을 온 마음으로 사랑할 용기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