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잃을 뻔한 세계를 되찾는 일이다.

감사

by 감격

어느 날, 지금은 쓰지 않는 페이스북에서 2011년도에 쓴 글이 알람으로 떴다.


"모든 것에 감사하기.

나는 나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문장은 유창했지만, 그 시절 나에게 감사는 설익은 느낌에 불과했다.

그러기에 그때의 감사는 나를 단속하는 '숙제'와도 같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이유 없이 남편이 미워지던 때도 그랬다.

억지로 감사일기를 쓰려고 하면 할수록 마음이 먼저 삐뚤어졌다.

"이 상황에서 대체 뭘 더 얼마나 감사하라는 거야"


마음이 단어를 따라가지 못했기에

감사는 위로이기보다 내 부족한 면을 확인시키는 가혹한 기준일 뿐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점점 곯아 갔고, 몸과 마음이 바닥을 치고 있을 때는

'내가 괜찮아야만 쓸 수 있는 말'이라는 오해가 더욱 깊어져만 갔다.

그래서 더욱 꾸준하지 못했고 기록은 남기지 못했다.

그 시기 나의 감사는 그저 '잘 쓴 문장'에 불과했다.


마음 한 구석에 감사에 대한 오해가 채 풀리지 않았던 작년,

나는 이 단어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쓰기로 했다.

더 이상 지금까지처럼 같은 방식으로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사 일기'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려놓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언어로 바꾼 것이다.


매일 밤, 잠들기 전, 딱 한 순간을 회상하고 기록했다.

오늘로 378일째인 '오늘의 감격'이다.

다시 시작된 감사는 간결했다.


"만약 오늘, 이 순간이 없었더라면?"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당연함'의 영역이었던 일상들이 '기적'의 영역이 되었다.

알아차리지도 못했던 찰나를 마주한다는 것은,

내가 이미 얼마나 많은 것을 조건 없이 받고 있는지를 하나하나 느끼게 해 주었다.


그간의 기록이 쌓이며 깨달은 사실은,

감사는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치열한 태도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전의 나는 불행이라는 익숙한 길에 자동 반사하듯 발을 들였지만,

이제는 그 길목에서 멈춰 설 수 있다.


아주 작은 나의 감격들은 촘촘히 엮여 나를 살리는 '동아줄'이 되었다.

어떤 날은 무사히 잠들 수 있다는 안도감이,

어떤 날은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내 생의 동아줄이 되어준다.


나는 모든 불행을 이겨낸 사람이 아니지만,

불행 앞에 무기력하게 주저앉는 대신,

가라앉을 뻔한 내 하루를 건져 올릴 방법을 언어에서 찾아낸 사람일 뿐이다.


이제 나에게 감사는 '잘해야 하는 숙제'가 아니다.

잃어버릴 뻔한 세계를 매일 밤 다시 돌려받는 가장 현실적인 생존의 기술인 셈이다.


나를 구원한 것은 거창한 행운이 아니라,
378일 동안 매일 밤 눌러 담은 감격의 순간들이었다.



[이 편이 남기는 정리]

감사는 없었을 수도 있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당연했던 일상을 다시 기적으로 되돌리는 선택이다.

결국 감사는 삶을 미화하는 말이 아니라, 잃어버릴 뻔한 세계를 되찾게 하는 가장 현실적인 생존의 언어다.


[이 편이 남기는 질문]

당신의 오늘에 "만약 이 순간이 없었더라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인가요?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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