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어린 시절의 나에게 '화'는 공포의 다른 이름이었다.
술을 마시고 오신 아빠가 같은 말을 반복하며 호통하던 화는 예고 없이 덮쳐오는 재난 같았다.
그 기운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숨을 죽이고 고개를 숙이는 것뿐이었다.
그때 나는 잔뜩 주눅 들어있었다.
어떤 말들은 나를 더 작게 만들었고,
나는 화라는 감정을 밖으로 꺼내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자랐다.
성인이 된 뒤, 억눌린 화는 '정의로움'이라는 가면을 쓰고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정류장을 묻는 승객에게 무례하게 목소리 높이는 버스 기사님께
지지 않고 한마디를 내뱉던 것처럼말이다.
그건 치기 어린 용기이기도 했지만,
더 이상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은 더 교묘하고 집요하게 내 안의 화를 건드렸다.
사내 CS 교육을 맡아 '친절'을 가르쳐야 했던 아이러니 속에서
정작 센터장들과의 마찰은 내 마음에 날카로운 가시를 돋게 했다.
웃으며 친절을 말하는 입술 안으로 화는 조금씩 나를 태워버리고 있었다.
인생의 파도는 내가 가장 약해졌을 때를 놓치지 않았다.
두 아이를 키우며 맞닥뜨린 경력 단절, 끝이 보이지 않던 코로나,
그리고 예고 없이 찾아온 암수술.
내 몸은 회복보다 '버티는 것'에 모든 기능을 집중해야 했고,
삶의 통제권을 잃어버린 나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시기, 내 안의 화는 폭발했다.
나조차 감당할 수 없는 뜨거운 불길이 치솟을 때면
관련 책들을 뒤적이면서 답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머릿속에 남는 것은 없었고, 그 불길은 결국 가장 가까운 나 자신에게로 향했다.
"왜 이것밖에 안될까?"
"왜 매번 참지 못하고 화를 낼까?"
내가 내뱉은 화는 나를 갉아먹는 독이 되어 돌아왔다.
그건 헌신도 성찰도 아니었다.
어쩌면 자기 학대에 가까웠다.
그렇게 한참을 타들어가던 나는,
화를 무작정 억누르거나, 그 불길에 나를 태워버리는 대신,
"알아차림"을 선택했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
그것을 '나'와 동일시하지 않고, 잠시 거리를 두고 보는 것.
"아, 지금 내 안에 화가 일어났구나"
"내가 지금 많이 힘들구나"
화를 낸다는 건,
내 안의 소중한 무언가가 침범당했다는 긴급한 신호다.
그 신호를 무시한 채, 상대를 공격하거나 나를 벌주는 대신,
잠시 멈추기로 했다.
내 감정에게도 잠시 쉴 시간을 주는 것이다.
화는 내 삶을 망치겠다고 휘두르는 불씨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내가 너무 지쳐있으니, 나 좀 돌봐달라"는
내 안의 내가 띄운 가장 서툰 응급 신호다.
화는 나를 해치려는 감정이 아니라,
나를 지키려다 서툴게 터져 나온 목소리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날 때, 나직하게 되내인다.
"지금은 잠시 멈추자.
이 감정과 나를 잠시 분리하자"
화를 내지 않는 대단한 사람이면 좋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다.
하지만 이 글을 보는 누군가가 화라는 불길 속에 있다면,
그 불길에서 뛰쳐나오길 바라며 이 글을 쓴다.
스스로를 지켜야 할 때이기 때문에.
[이 편이 남기는 정리]
화는 통제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내 마음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가장 정직한 경고음이다.
[이 편이 남기는 질문]
오늘 당신을 뜨겁게 달군 그 화는,
당신의 어떤 마음을 “지켜달라”라고 외치고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