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
누군가의 쓸모였던 나
나의 삶은 늘 '무'에서 '유'를 만드는 개척의 연속이었다.
아르바이트에서 시작해 특별 채용이 되거나
존재하지 않던 부서를 맨바닥에서 일궈내면서 나는 언제나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온몸을 갈아 넣어 자리를 잡고 나면,
그 결실은 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성과를 탐내는 이에게 자리를 내어주거나,
때로는 육아라는 현실 앞에 모든 노력을 접고 돌아서거나
너무 많은 것을 안다는 이유로 경계의 대상이 되어 밀려났다.
나는 늘 누군가의 집을 위해 소진되었다.
그들이 원하는 멋진 집을 지어주고 정작 갈 곳이 없어 길 위에 서야 했다.
성실함이 배신감으로 돌아오는 경험이 반복되자,
내 안의 무언가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무기력, 강제 정지 명령
그렇게 정체를 모른 체 시작된 무기력은 지독했다.
단순한 게으름과는 또 다른 무엇이었다.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내 영혼이 스스로에게 내린 '강제 정지'명령이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손 쓸 수 없이 아팠다.
사람들은 "결핍이 없어 그렇다"라고 쉽게 말했지만,
내가 겪는 고통은 소진에서 오는 공허였다.
일어서려 애쓰지 않은 것이 아니다.
책을 읽고, 다양한 부업을 도전하거나
챌린지에 참가해 가며 끊임없이 버둥거렸다.
하지만 늘 어떤 지점을 넘어서지 못했다.
스스로 일어설 힘을 잃었다는 자책은 독이 되어 돌아왔다.
식당 일, 청소 일을 나가지도 못하면서 집에서 바보처럼 앉아있는
내 모습이 미워 견딜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실패의 유령과 싸우는 일
지금 나를 겨우 붙들고 있는 유일한 끈은
1년 3개월을 이어온 '브런치'와 '스레드'라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나는 비로소 누군가를 위한 도구가 아닌, 나 자신으로 숨을 쉰다.
하지만 이 소중한 끈마저 '전자책'이라는 결과물 앞에서는 자꾸만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인다.
이미 한 번의 전자책 발행을 경험했고,
그것은 내게 '실패'라는 낙인을 남겼다.
그러기에 이번에는 "완벽하기보다 실패하기 위해 써보자"라며
스스로를 속여보려 하지만 내 무의식은 이미 알고 있다.
또다시 완벽해지려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고,
결국 다시 무기력의 늪에 빠져 길을 잃고 마는 악순환,
이것이 2026년 첫 달에 내가 마주하고 있는 벽이다.
돈이 되지 않아도 여전히 하는 이유
누군가는 내가 하는 것들을 보며
"돈도 안 되는 일에 왜 그렇게 에너지를 쓰냐"며 무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알지 않던가.
내가 이 엉망인 체력과 마음을 이끌고도 무언가 계속하려는 이유는
그것이 다시 나를 살게 할 유일한 길임을 믿기 때문이다.
나 혹은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무기력은,
게으름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 잘해보고 싶어서,
이 번만큼은 내 이름을 온전히 지키고 싶어서 겪는 '통과 의례'에 가깝다.
길을 잃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내가 어딘가로 가려했다는 증거이다.
건네고 싶은 말
오늘도 나는 모니터 앞에 앉아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본다.
전자책의 백지는 실패의 기억에 가로막혀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실패의 비웃음도 이곳에선 글감이 된다.
성공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단지 '멈추지 않기 위해 쓰는 글'
돈이 되지 않아도 내 존재를 증명하는 이 비효율적인 행위가
결국은 나를 무기력의 늪에서 건져 올릴 밧줄이 되어줄 것이다.
조금 늦어도, 길을 잃어도 괜찮다.
그 김에 잠시 주저앉아 쉬어가는 것뿐이다.
다시 일어설 힘은 외부의 격려가 아니라,
이 길 잃은 시간을 기록하는 나의 손끝에서 나올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도 지금 길을 잃었다면,
그 자리에서 당신만의 기록을 시작하기를.
그 손끝이 당신을 건져 올릴 가장 단단한 밧줄이 되어줄 것이다.
[이 편이 남기는 정리]
무기력은 멈춰버린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타인의 집을 짓느라 소진된 당신이 비로소
'나만의 것'을 되찾기 위해 잠시 길을 잃어주는 시간이다.
[이 편이 남기는 질문]
당신을 멈춰 세운 그 무기력은,
사실 당신이 무엇을 그토록 '잘 해내고 싶어 했기에' 찾아온 통증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