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는 곧 새 길이 열릴 벽이다.

한계

by 감격

나는 무능하다. 오랫동안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싫었다.

그 결핍을 숨기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과잉이었다.

일을 할 때면 24시간 내내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일에 완전히 몰입해 산다는 달콤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지만,

실상은 나를 증명하기 위해 벼랑 끝으로 내모는 가혹한 채찍질이었다.


여기서 멈추면 타인에게 뒤처질 것 같다는 공포,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 같다는 불안이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나는 나를 벼랑 끝으로 밀어 넣으며 그것을 '열정'이라 미화했고

나를 소진시키는 과정을 '성장'이라 믿었다.

하지만 벼랑 끝에서 내딛는 걸음은 결코 도약이 될 수 없었다.

그것은 처참한 소멸이자, 나 자신을 잃어가는 성실하고도 비참했던 시간이었다.


벼랑 끝을 향해 브레이크 없이 달리던 나를 멈춰 세운 것은 내가 아닌 한계라는 '벽'이었다.

내가 멈춰 선 건 예상치 못한 암수술과 번아웃,

전 세계가 멈춰버린 펜데믹이라는 벽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처음에는 그 벽을 원망했다. 나를 가로막은 벽, 달리지 못하게 하는 벽.

달리지 못하게 된 나는 벽을 두드리며 무력하게 울었다.


기진맥진하게 힘이 다 빠져 벽에 몸을 기댄 순간,

역설적이게도 나는 벽의 온기를 느꼈다.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잠시 숨을 고르자"


그것은 나를 가두기 위한 감옥이 아니라, 나를 살리기 위한 단단한 배려였다.

한계에 다다른 내 몸과 마음에 보내온 신호는

더 이상 부서지지 않도록 나를 받아내 준 가장 정교한 안전장치였다.


나에게 한계는 정복해야 할 고지가 아니라, 대화의 상대다.

벽 앞에 멈춰 선 시간은 '무기력'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곤 하지만,

그것은 타인을 위해 소진된 내가 비로소 '나만의 것'을 되찾기 위한 시간임을 안다.


그 덕에 나는 이 벽이 내게 어떤 말을 건네는지 귀를 기울인다.

내 안의 진짜 목소리가 무엇인지 정돈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가야 할 방향을 재설정하는 기회가 된다.

한계라는 벽에서 만나는 것은 '실패'라는 낙인이 아니라,

내 삶을 다시 디자인할 수 있는 '재설계'할 기회인 셈이다.


벼랑 끝에서 나를 밀어버리던 가혹한 관성을 버리고,

나는 벽을 향해 정중히 노크한다.

이 노크는 다음 챕터를 여는 가장 용기 있는 시작이 될 것이다.



[이 편이 남기는 정리]

한계는 나를 끝장내러 온 벼랑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고 새 길을 안내하러 온 '벽'이다.

그 벽 앞에 멈춰 서는 것은 후퇴가 아니라, 나만의 궤도를 확인하고 삶을 재설계하기 위한 가장 용기 있는 멈춤이다.


[이 편이 남기는 질문]

당신은 지금 당신을 멈춰 세운 그 한계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싶나요?

그것을 당신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볼 것인가요, 아니면 당신을 지켜주는 든든한 지원군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요?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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