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
평범했던 일상이 갑자기 바뀌었을 때, 우리는 그 생소함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마 우리 모두에게 찾아왔던 팬데믹 속 재택근무가 그랬을 터다.
나는 출퇴근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설렘도 잠시,
집안일과 업무의 경계가 허물어진 공간에서 나는 혼란에 빠졌다.
아이들을 챙길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자꾸만 눈에 밟히는 집안일은 업무의 몰입을 방해했다.
공간의 분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더욱 길을 잃곤 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단순히 반복하는 습관이 아니라 '나만의 의도'를 담은 세 가지 루틴을 만들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 나를 손님처럼 대접하며 마시던 차 한 잔,
경직된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 주던 아로마 호흡,
그리고 오후의 정적을 메워주던 자연의 소리.
이 사소한 행위들은 팬데믹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혼자인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보호막이자 나를 응원해 주는 도구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팬데믹의 긴 터널을 지나 일상의 풍경이 다시 바뀐 지금,
나는 이 루틴이라는 말을 다시 정의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환경이 변하면 그에 맞는 새로운 질서가 필요한 법이다.
썰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새로운 길을 내듯,
나는 이제 과거라는 안전한 피난처로 도망치는 복구가 아니라 현재에 맞는 재설계의 과정을 시작하려 한다.
그 변화는 독서에서 시작되었다.
한때는 매일같이 책장을 넘기며 지식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또 어떤 시기에는 읽는 것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며 책을 멀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느린 독서'를 선택한다.
거창한 목표 대신, 하루에 딱 한 장이라도 마음을 통과하는 문장을 만나는 것.
이 사소한 반복이 오히려 흔들리는 일상을 붙잡아주는 가장 확실한 밧줄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반면, 여전히 가장 아픈 손가락은 운동이다.
필라테스를 주 3회씩 10개월이나 해보았고,
한 달간의 러닝 챌린지, 다양한 홈트도 완수해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운동은 내 삶에 매끄러운 습관으로 안착하지 못했다.
루틴이 단순히 반복되는 행동이 아니라 의도를 갖는 행동이어야 한다면,
내 몸은 여전히 그 의도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저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주 2회 새로 시작한 운동 역시 발전은 더디고 과정은 지루하기만 하다.
하지만 나는 이번만큼은 그 지루함을 견뎌보기로 했다.
415일 동안 매일 밤 써 내려간 감격 일기가 나를 무기력의 늪에서 건져 올렸듯,
지루한 운동의 시간들 역시 언젠가는 나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근육이 될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루틴은 나를 바꾸려는 채찍이 아니라,
내가 나다운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돕는 가장 다정한 지도다.
비록 발전이 더디고 숨이 차오를지라도,
나는 오늘 다시 나만의 궤도를 묵묵히 채워나가려 한다.
루틴은 매번 성공하기 위해 세우는 계획이 아니라,
지루함과 더딘 발전을 기꺼이 수용하며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매일 아침 마음을 다잡는 아주 사소한 다짐이다.
[이 편이 남기는 정리]
루틴은 단순히 반복되는 습관이 아니라,
변화하는 삶의 파도 속에서 나라는 중심을 잃지 않게 돕는 작지만 가장 능동적인 행위다.
[이 편이 남기는 질문]
당신이 공들였음에도 여전히 습관이 되지 않는 그 일은,
사실 당신이 어떤 '지루함'을 견디며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일구고 싶어 하는 마음의 증거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