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려다 괴물이 된
나에게 건네는 한마디, "충분해"

충분함

by 감격

나는 오랫동안 '충분'이라는 말을

'가득 참' 혹은 '결핍 없음'이라는 양적인 상태로 오해해 왔다.

그래서 나의 삶은 늘 '조금 더'라는 엔진에 의해 움직였다.

더 나은 글, 더 완벽한 엄마, 더 많은 성과...

하지만 그 질주의 끝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늘 '아직 부족하다'는 허기짐뿐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이 단어를 어떻게 써왔는지 그 흔적이 선명하다.

나는 '충분'을 늘 미래의 어느 지점으로 유예하며 살아왔다.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충분할 거야",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내 삶도 충분해지겠지".

그렇게 미래의 충분함을 위해 현재의 나를 채찍질하는 동안,

정작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진 것들은 '부족함'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져 있었다.


내가 '충분함'을 느끼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완벽'과의 혼동 때문이었다.

완벽을 추구한 것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그 이상을 해야 충분하다고 믿었기에,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가혹한 검문관이 되었다.


암 수술 후 기력을 회복하던 시기에도,

나는 쉬어가는 나를 '충분히 고생했다'라고 다독이는 대신 '왜 이것밖에 안되느냐'라고 몰아세웠다.

그때의 나에게 충분이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 단어의 물길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은 육아 덕분이었다.

완벽한 엄마가 되려다 지쳐 괴물이 되어버린 나를 발견했을 때,

"있는 그대로도 충분히 좋은"이라는 문장이 구원이 되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신이 아니라,

실수에서도 곁에 있어주는 엄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제야 나는 나를 짓누르던 완벽의 굴레에서 한 걸음 물러설 수 있었다.


이제 나에게 충분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선택'이다.

417일째 이어오고 있는 '오늘의 감격'은

내가 매일 밤 나 자신에게 "이것으로 충분하다"라고 건네는 가장 현실적인 생존과 감사의 언어다.


"만약 오늘, 이 순간이 없었더라면?"

이 질문 앞에 서면, 평범한 일상의 파편들은

더 이상 결핍의 증거가 아니라 내가 이미 누리고 있는 기적의 조각들이 된다.

나는 더 이상 나를 깎아내려 타인의 속도에 맞추지 않는다.


대신, 내가 가진 에너지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한 나를 안아주기로 했다.

충분함은 '더 이상 필요 없는 상태'가 아니라,

'지금의 나로도 길을 걷기에 부족함이 없다'라고 믿어주는 마음의 근육이다.


나는 오늘도 이 서툰 문장들이 누군가에게 '나도 이만하면 충분하구나'라는 쉼표가 되길 바란다.



[이 편이 남기는 정리]

충분은 미래의 성취 끝에 얻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결핍과 소음 속에서도 "지금의 나로도 괜찮다"라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이 편이 남기는 질문]

당신은 오늘, '더' 가져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당신이 이미 가진 것들만으로도 "이만하면 충분해"라고 자신에게 너그러웠나요?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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