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음
한동안 나는 내가 너무나 작은 존재라고 느꼈다.
거대한 세상의 톱니바퀴 속에서 나 하나쯤은 없어져도
아무런 티가 나지 않을 것 같은 무력감이 나를 짓눌렀다.
내가 일궈온 성과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경험을 반복하며,
나는 차라리 이 작은 존재가 하는 노력 자체를 포기해 버리는 것이 가장 쉬운 선택이라고 믿고 싶었다.
'작다'는 것은 곧 '힘이 없다'는 뜻이었고, '포기해도 무방하다'는 변명과 같았다.
그 포기의 문턱에서 나를 멈춰 세운 것은 아이들의 '작음'이었다.
내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아이들의 등, 조그만 손가락,
그리고 그 작은 입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문득 깨달았다.
아이들은 이토록 작지만,
그 안에는 세상을 다 담고도 남을 폭발적인 생명력이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작은 몸은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가장 밀도 있게 응축해 놓은 '시작의 상태'였다.
그 작은 손으로 세상을 붙잡고, 작은 발로 자기만의 궤도를 만들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비로소 내 안의 '작음'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가진 그 생명력이 사실은 내 안에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꼈을 때,
나 자신을 포기하려 했던 마음이 얼마나 성급했는지 알게 되었다.
씨앗은 작지만 그 안에 거대한 나무를 품고 있듯,
지금 내가 느끼는 '작음'은 내가 보잘것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꽃 피우지 못한 가능성이 내 안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라는 작은 섬의 해안선을 그려나가는 이 시간은 결코 헛된 방황이 아니다.
매 순간 치열했던 나의 조각들이 모여 결국 나만의 고유함을 완성해갈 것임을 믿어본다.
나를 포기하기엔, 내 안에 담긴 생명력의 농도가 너무나 아쉽고도 귀하기 때문이다.
그대가 어떤 씨앗이든, 모두 귀하다는 것은 변함없기에
자신의 작음을 모른 척하지 않길 바라며.
[이 편이 남기는 정리]
'작음'은 힘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모든 거대한 것들이 시작되기 위해 선택한 가장 단단한 농도다.
나 자신을 작은 존재라 치부하며 포기하고 싶을 때,
그것은 사실 당신 안에 너무나 큰 가능성이 응축되어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이 편이 남기는 질문]
당신이 오늘 '보잘것없다'라고 느낀 당신의 작은 부분들 속에,
사실은 어떤 엄청난 생명력과 가능성이 숨을 죽이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