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비커밍
나는 화가 많은 사람이다.
한동안 이를 고치고 싶어서
화와 관련된 책을 연달아 읽을 정도였다.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왜 후회할 줄 알면서도 늘 같은 방식으로 반응했던 것일까?
화는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나를 다치게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화를 내서 바뀐다면 화를 내지.
그런데 대부분은 아니라서 화낼 일이 없어"
래퍼 코쿤님의 말이었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곱씹을수록 그 말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새겨졌다.
나는 늘 잘하려고 애쓴다.
그래서인지, 예상과 다른 흐름이 생기면 쉽게 당황하고 화가 났다.
아이를 챙기며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는 더욱 큰 소리가 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 습관처럼 아이 탓으로 돌렸다.
"또 안 챙긴 거야?"
"엄마가 몇 번을 말하는 거야"
화가 날 때마다,
나는 가장 사랑하면서도 약한 존재인 아이들에게 불을 던졌다.
그리고 그 끝엔 언제나 깊은 후회와 미안함이 남았다.
그리고 바쁜 월요일 아침,
문을 막 나서려던 아이가, 안경을 찾고 있었다.
매일 아침 물건을 찾느라 소란스럽던 상황이 또 반복되었다.
안경을 잃어버리다니, 평소라면 화를 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화를 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뭘까?
내 말이 통하는 걸까, 아이가 겁을 먹는 걸까?"
그 질문하나 가 나의 화를 멈추게 했다.
나는 숨을 고르고 아이에게 말했다.
"우선 그냥 가고 갔다 와서 찾아보자"
아이는 나를 살짝 안아주었고,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화를 덜 내기로 다짐한 아침,
다정함을 선택하는 것을 해낸 기분이었다.
하지만 하루는 길었다.
오후에도 잘 참으려 애썼지만,
늦은 저녁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다.
'이만큼이나 참았는데 또 이래?'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 감정은 결국 나를 다시 화로 밀어붙였고,
아이 앞에서 또다시 불씨를 터트렸다.
그날 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왜 화를 없애고 싶을까.
답은 명확했다.
나는 나의 아이가 다정함 속에서 살길 바란다.
또 그 안에 내가 있길 바란다.
그러던 중 법륜 스님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화는 '내가 옳다'라는 생각에서 온다.
그걸 오래 붙들고 있으면 결국 손해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에 내가 사로잡혔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내려놓는 것이다"
그 말을 되뇌었다.
나는 늘 옳은 방식으로 잘해보려고 애를 썼다.
특히 아이에게 화를 낼 때마다,
그 '옳음'은 결국 서로에게 상처가 되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고,
아이에게 사랑으로 느껴지는 기억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소리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만약, 나라면 그런 사랑이 반가울 리가 없다.
아이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애를 써본다.
화라는 불씨가 꺼질 순 없겠지만
그 불을 아이에게 튀지 않도록,
그저 아름답고 따스함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다정함을 선택할 것이다.
오늘의 비커밍 질문
내가 화를 낼 때, 정말 바라는 건 무엇인가요?
오늘 하루, 화를 내고 싶을 때 어떤 다른 선택을 해볼 수 있을까요?
작은 실천 가이드
오늘 나를 자극한 장면을 떠올려보세요.
그때 내 마음속에 올라온 감정을 구체적으로 적어보세요.
그 감정에 반응하는 다른 방식을 상상해 보세요.
오늘의 비커밍 질문
내가 화를 낼 때, 정말 바라는 건 무엇인가요?
오늘 하루, 화를 내고 싶을 때 어떤 다른 선택을 해볼 수 있을까요?
작은 실천 가이드
오늘 나를 자극한 장면을 떠올려보세요.
그때 내 마음속에 올라온 감정을 구체적으로 적어보세요.
그 감정에 반응하는 다른 방식을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한 줄 다짐을 써보세요: “나는 오늘, 다정한 내가 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