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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국퀴어 Mar 06. 2022

아직 시작도 못 한 이야기

정한새




나는 어쩔 수 없이 강남역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한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은 대중화의 절정을 맞이했다. 물론 그전에도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는 있었고, 대학에선 여성학을 가르쳤으며 여성단체에서는 훌륭한 활동가를 배출해냈다. 페미니즘이라는 게 그 살인사건 이후로 갑작스럽게 하늘에서 떨어졌다거나 땅에서 솟아오른 게 아니란 의미다. 그러나, 그 살인사건이 어떤 기폭제가 된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 이후로 우리 사회는 전례 없이 큰 목소리로 여성 인권과 여성의 삶과 여성의 삶 너머를 말하기 시작했다. 말하고, 듣고, 쓰고, 춤추고, 노래하고, 그리고, 재현하고, 회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가 곧 내 것인 양 깊이 받아들이고 느끼고 곱씹으며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그러니 어쩌면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얘기는, 일견 ‘불경’할지도 모르겠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난 이후, 여성 혐오 범죄에 대한 규탄이 사회 곳곳에서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손만 대도 데일 것 같은 분노가 시간과 공간 사이에 묻어났다. 나의 언니들, 선배들, 이모들, 동생들, 후배들, 친구들, 동료들이 분노하는 순간이 기껍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다. 나 역시 그 안에서 깊은 연대와 동질감을 느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와 강남역 살인사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살인사건 이후 바뀐 분위기와 흐름, 미디어에 노출되는 여성의 모습과 두드러지기 시작한 여성 서사 이야기 같은 것을 나눴던 기억이 난다. 그런 대화 도중, 친구가 말했다.


‘사람들이 피해자가 나였을 수 있다고 말하잖아. 나도 그 사건을 접하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니까. 아, 다른 날 다른 시간이었으면 내가 죽었을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


평소에 구호처럼 쓰이던 ‘그 사람이 나일 수 있었다’는 표현을, 친밀한 사람의 목소리로 들은 건 처음이었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인 후, ‘그래, 그렇게 느낄 수 있지’라고 대꾸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생각했다. 어째서 나는 그 말을 듣는 즉시 ‘아, 그치. 당연하지. 너였을 수도 있고 나였을 수도 있지’라고 대답하지 못했을까?


스스로에게 한 질문에 어설프게나마 답을 내릴 수 있었던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계기는 사소했다. 개인적인 볼 일이 있어 한 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중간에 환승도 했다) 강남역에 도착해 9번 출구로 나온 것이다. 꽤 많은 계단을 밟아 올라가며 지상에 도착한 순간, 아, 하고 깨달았다.


강남역은 내 ‘공간’이 아니었다. 나는 살면서 여기서 살해당할 걱정을 할 일이 없었다.


물론 강남역 살인사건이 갖는 상징성이 ‘강남역’이라는 공간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 그러나 그 사건이 띄는 보편성이, 대표적인 여성 혐오 범죄로 사람들이 인식한 살인사건이 모든 여성에게 동일한 무게로 다가올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건 조금 다른 의미이다. 나는 강남역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강남역 10번 출구를 상상할 수 없고, 그곳을 일상적으로 지나치지도 못한다. 그러니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고, 한 점 거리낌 없이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강원도에서 태어나 자랐고, 충청도에서 십 대를 보냈으며 서울에서 대학교를 나와 지금은 경기도에 살고 있다. 강원도청이 있는 춘천에 기차 뿐 아니라 지하철도 다니기 시작한 건 약 10년 전 일이다. 춘천역에는 출구가 두 개고, 남춘천역은 세 개다. 인생의 3/4를 넘은 시간 동안 지방에서 살아온 나에게, 10번 출구까지 있는 지하철역은 쉬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거기까지 깨닫고 나니, 또다시 자문(自問)이 따라왔다. 만약 문화전당역 3번 출구 근처에서 같은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면, 비슷하게 크게 알려져 페미니즘 대중화가 일어났을까? 어쩌면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팔거역 근처에서도 비슷하게 누군가가 죽지 않았을까? 지하철이 아직 들어서지 않은 곳에서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고 일어날 살인사건은 우리가 얼마나 알게 될 수 있을까?


이날을 기점으로 나는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많은 이야기 사이를 누비며 살면서도, 왜 내 마음을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그중 반절도 채 되지 않는지를 깨달았다. 그 모든 이야기와 나의 일부를 공유하고 있긴 했지만, 동시에 결코 공유할 수 없는 어떤 지점들이 계속 있었던 것이다. 


지방에 관한 이야기, 퀴어에 관한 이야기, 여성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 많다. 하지만 지방에 사는 퀴어 여성의 이야기를 찾으려고 하면 갑자기 막막하다. 어떤 단어로 검색해야 할지, 어디서 이야기를 찾아야 할지, 얼마나 많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이건 내가 뭘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당연히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많은 수의 지방-퀴어-여성들이 살길을 찾아서 자리를 잡고 옴싹옴싹 무언가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옴싹옴싹 무언가를 해보려고 한다. 언젠가 수도권을 떠나 춘천으로 돌아가고 싶으니까, 춘천에 돌아갔을 때도 씩씩하게 잘 살아남기를 바라니까.


그러므로 원컨대, 많은 분이 나와 조재 님의 이야기를 읽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 지방에서 살아가는 퀴어 여성으로서의 삶이 어떤지를,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마음속에 가득한 답답함과 우울과 분노와 희망과 즐거움을 풀어놓아 주면 좋겠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가 또 다른 타래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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