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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국퀴어 May 30. 2022

애인 말고,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조재

이전 글에서도 밝힌바, 나는 겁이 많아 26살 이전엔 벽장에서 지냈다. 인터넷 퀴어 커뮤니티(이하 다음카페)에 강원도 글이 올라와도 눈팅만 하기 바빴다. 그렇다고 늘 눈팅만 했느냐? 그건 또 아니다. 오히려 지역이나, 정체성(지향성)과 무관한 일상 이야기엔 잘 섞여 들어갔다. 10대 후반이었는지, 20대 초반이었는지 지금은 시기도 기억나지 않는 까마득한 때, 하루는 <일랜시아>라는 게임을 주제로 글이 올라왔다. ‘일랜시아 아는 사람?’ 정도의 별 내용 없는 글임에도 내가 정말 애정하는 게임이라 반가운 마음에 댓글을 달았다. (*일랜시아는 1999년 출시된 고전게임으로 당시 이미 망겜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게임에서 만나 시스템을 통해 친구 인연을 맺었다.


다음카페에서는 누구와도 이어지지 않았던 대화가 게임에선 쉼 없이 줄줄 이어졌다. 왜 아직도 이런 망겜을 하냐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일상에 대한 질문으로, 성지향성에 대한 질문으로, 연애와 친구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상대는 나보다 2살 연하인 대전 사람으로, 나이도 지역도 달랐지만 하는 고민은 비슷했다. 지역에서 사람을 만나는 게 너무 두렵고, 친구 사귀는 것조차 쉽지 않으며, 연애는 꿈도 못 꾼다든지. 실존하는(?) 사람과 이렇게 고민을 나누고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물론 게임도 즐거웠다. 사냥도 하고, 요리도 하고, 광장에서 사람 구경도 해가며 생에 첫 퀴어 친구를 사귀었다. 하지만 게임에서 시작한 인연은 게임을 접으며 함께 마무리됐다. 대전과 강원도라는 접점 제로의 조건에도 연락처를 교환하는 건 또 겁이 났던 게다.


후에도 나름 친구를 사귀어 보겠다고 다음카페를 들락거렸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나는 편하게 이야기 나눌 친구를 원했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은 연애 상대를 원했다. (TMI: 나는 상대와 오래 아는 사이로 지내다가 감정이 생기는 편으로, 인터넷으로 만난 사람과 연애한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일까요. 제가 늘 헤테로만 짝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건.) 불편한 텐션. 그걸 원한 게 아닌데….


성인이 된 후로 서울에 일정이 있어 잠깐 참여했던 번개 자리는 특히 최악이었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서로 소개하고 술을 마시는데 사랑의 작대기가 여기저기 꽂히는 걸 보고 있자니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 번개가 그런 자리인 줄 모르고 갔던 내 잘못이다만. 서울에 살지 않아서 그런 문화가 있다는 걸 잘 몰랐을 뿐(이라 변명하고 싶다.)


당시 내가 아는 한, 퀴어 친구를 만들 수 있는 통로는 인터넷 세상뿐이었으니 이런저런 시도가 실패로 끝나며 나는 거의 마음을 닫아버렸다. 이번 생은 망했다! 그랬던 내 일상의 지반을 흔들어 놓은 자가 있었으니….


그 이야기는 2주 후에 공개됩니다. 커밍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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