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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국퀴어 Apr 11. 2022

나는 그런 10대를 보냈다.

조재

강원도에서 여중 여고를 나왔다. 짐승에 조금  가까운 생명체였던 중학생 시절, 세기의 사랑인  연인 흉내(복도  끝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와 입맞춤을 흉내 내는 퍼포먼스) 내는 친구 둘을 장난스럽게 떼어내는  당시 놀이  하나였다. 그들을 바라보는 다른 친구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재밌어하며 그들의 사랑(?) 가로막는데 적극적인 친구, “우리도 만날까~?” 너스레를 떠는 친구, “x년들  저런다.” 혀를 차는 친구. 나는 유난히 내성적인 성정의 학생으로, 그들의 놀이를 멀리서 관망하는 공기 같은 존재였다. 짝사랑하는 친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다가 밀려오는 자기혐오에 치를 떨었다.


어떤 날엔 친구 P가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같이 하교하던 A와 B가 “저번에 약속한 거.”라며 애틋하게 포옹을 했다는 건데…. 이상하지 않니? 그래 이상하구나. 정도로 대화를 마무리했던 것 같다. 몇 년 뒤 퀴어 커뮤니티에서 A의 사진을 보게 됐고 나는 일면식만 있는 그 애에게 한동안 죄책감을 느꼈다.


고등학생이 되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 여고 옥상에서 누구누구가 키스하다가 아이들에게 발각당했고 내내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 있었다. 나는 학교가 달라 나중에야 전해 들었지만, 이야기를 전해주는 친구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더러운 년들이라거나, 역겹다거나 뭐 기타 등등. 좁디좁은 지역이라 소문이 일파만파 퍼지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나같이 친구 없는 애도 알 정도라면….)


또래 친구들에게 성지향성과 관련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렇게 마음이 헛헛할 때 다음카페에 들어갔다. A를 보았던 그 커뮤니티.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은 건지 늘 익명 게시판에만 글이 쌓였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남기는 한탄 글을 읽으며 묘한 위로를 받았다. 카페에는 지역별 게시판이 따로 존재했는데, 강원도에 new가 뜨는 일은 드물었다. 어쩌다 new가 뜨면 친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반가운 마음에 들어갔다가 같은 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했다. 어차피 같은 지역 글 이래도 댓글을 달지 않을 거면서. 댓글을 달았다가 괜히 내 존재가 알려지면(그럴 리 없지만) 그 소문을 어찌 감당하겠나.


댓글을 달았다 한들 달라지는 것도 없었을 거다. 다른 사람들 댓글은 “와 반가워요. 저도 강원도 원주예요.” 류의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거기엔 대댓글이 달리지 않았다. 그냥 생존 신고 정도였을까.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나는 그런 10대를 보냈다. 또래집단의 혐오는 너무 익숙한 것이라 그건 곧잘 자기혐오로 이어졌고, 내가 가해자가 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나와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이들이 올리는 익명 글에 기대어 벽장에서 지냈다. 수도권에 살았다면 달랐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메아리 정돈 있지 않았을까. 강원도는 메아리가 돌아오지 않는다. 생존 신고만 있을 뿐. 그마저도 엄청 용기 낸 거라는 걸 알기에 그저 숙연해질 뿐.



*현재는 강원도에서도 많은 분들이 퀴어 가시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과거 경험을 이야기하는 글일 뿐, 강원도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의 노력을 지우는 글로 읽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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