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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국퀴어 Apr 04. 2022

나의 살던 고향은

정한새




강원도에서 살다가, 충청남도에서 살다가, 서울특별시에서 살다가, 경기도로 이사 왔다. 가장 오래 산 곳은 강원도였고, 지금도 드문드문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강원도로 돌아가고 싶다. 나이를 먹으면 돌아가고 싶은 이유는, 지금 강원도에 돌아가면 돈을 못 벌기 때문이다. 강원도는 젊은이들이 일할 곳이 없다. 특히 내가 살았던 춘천은 그야말로 관광업과 공무원의 도시라 카페를 차리거나 공시를 보거나 둘 중의 하나를 택하지 않으면 목숨 걸고 직장을 다녀야 한다.

이상한 건 여전히 그렇게 강원도로 돌아가고 싶은데도, 막상 강원도에 가면 서먹해진다는 거다. 여기서 이렇게 오래 살았고, 어느 집 닭갈비가 제일 맛있는지도 알고(그 사이에 흥망성쇠가 있었기 때문에 내 최애 닭갈비집도 다섯 번 정도는 바뀌었다), 산책하기 좋은 곳과 달리기 좋은 곳까지 다 알면서도 강원도에 발을 디디면 그렇게 거리감이 느껴진다. 마치 7년 만에 만난 넷째 고모부처럼.

고향의 정의가 무엇인지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연어처럼 돌아가고 싶은 그곳이 고향인지, 내가 지금 마음 붙이며 살고 있는 곳이 고향인지, 언젠가 노후를 맡기고 싶다고 생각하는 곳이 고향인지.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나는 결국 고향이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지방에 살 때는 온전한 나를 드러낼 수가 없었다. 나는 유년기를 면(面)에서 보냈는데, 면은 농촌 지역을 지칭하는 행정 구역으로 읍보다 도시화가 덜 되어 있다. 그런 곳의 특징은, 당연히 내가 어느 집 자식인지 온 동네가 안다는 것이다. 하루에 다섯 대 정도 다니는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으면 길 양쪽에 자리한 논밭의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한새 학교 다 오냐!’ 하고 인사를 해주셨고, 그분들이 바빠서 나를 못 보면 하다못해 동네 누구네 집 강아지라도 나를 향해 짖었다. 그 자리에서 ‘저는 바이섹슈얼입니다!’ 라고 소리 칠 수가 없었다. 일단 바이섹슈얼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부터가 고난일 게 눈에 보였다.

서울에서는 반대로 대체로 어디서든 내가 퀴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에도 꼬박꼬박 갔고, 연애도 하고, 여기저기 모임이며 활동에 돌아다니기도 많이 돌아다녔다. 서울에서 보장받을 수 있는 익명성은 엄청나게 크고 아름다운 무언가였다. 나는 아무도 인사하지 않는 곳에서 내가 나임을 이야기할 수 있는 감각이 얼마나 짜릿한지를 배웠다. 하지만 서울은 그 익명성만큼의 위험성이 존재했다.

그 위험성은 내 옆집 아저씨가 내 이름을 아는 것과는 현저히 다르고, 압도적으로 큰 위험이었다. 익명성이 깨지는 순간, 나는 누군가가 대학의 조교실에 전화해 거기 다니는 정한새가 더러운 동성애자라는 소리를 할 거라는 구체적인 협박을 감당해야 했다(당연히 내가 ‘더러운’ ‘동성애자’가 아닌 건 그 순간 중요하지 않았다).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만큼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나를 세밀하게 혐오하는 사람 역시 많았다. 서울에 n년 사는 동안 친구를 사귀지 않은 것도 아니고 활동을 안 한 것도 아닌데, 가장 위협적인 순간에 되돌아올 말이 무엇일지 걱정 없이 고민을 늘어놓을 사람 하나가 없었음을 아프게 깨달아야 했다.

직장 때문에 자리 잡은 경기도는 더했다. 나는 여기에 가족과 친구가 없는 것 뿐 아니라 내가 활동해오던 기반 역시 없었다. 온전히 홀로였고, 누군가를 새로 찾기에는 여기에 얼마나 더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직장의 몇몇에게 커밍아웃을 했지만 그게 나의 삶과 이어질 리가 만무했고, 동네 퀴어를 찾기에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퀴어로 정체화하고 십 몇 년을 돌아다니며 살았는데 모든 게 허랑했다.


정체성을 다진 곳에서는 비 피할 집을 구할 수 없고, 내가 태어나 자란 곳에서는 나일 수 없고, 마음 붙이고 싶은 곳은 아직 찾지 못 했다. 한동안은 강원도로 돌아가고 싶으니 거기가 고향이려니 했는데 요새는 그게 과연 그리움인지, 지방에서 뭐라도 해봐야지 않겠냐는 혼자만의 약속 때문에 생긴 일방적 부채감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집 짓고 마음 붙여 살고 싶은 곳이 고향이라면, 내 고향은 어디에도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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