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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국퀴어 Mar 28. 2022

내가 속한 사회에서  배제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조재

3년 만에 페이스북을 켰다. 큰 계기가 있어서 들어간 건 아니었다. 다만, 회사에서 페이스북 계정을 홍보하기에 구경 차 들어갔는데 로그인을 해야 볼 수 있다는 게 아닌가. 거기 별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부득부득 보겠다고 로그인을 시도했다. 아이디를 기억해내는 것부터 난관이었는데 다행히 한방에 로그인에 성공했다. 친구가 91명뿐이군.


페이스북은 3년 간 꽤 업데이트가 진행된 듯 인터페이스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내 지난 피드를 보니 정말 누가 봐도 퀴어, 페미니스트 같았다. 낙태죄 폐지 시위 피켓 사진, 대구 퀴퍼 사진, 퀴어페미니스트매거진 <펢>을 들고 찍은 단체사진, 지역의 여성단체를 찾아가 함께 찍은 사진 등. 돌아보니 꽤 열심히 살았구나 싶다.


오랫동안 수락하지 않은 팔로우 신청 탭에는 대학 동기의 이름이 떠있었다. 불현듯 2016년의 기억을 되새김질했다. 그래, 내가 그 시점을 기준으로 기존에 알던 사람들을 다 친구삭제 했었지. 특히 대학을 통해 알게 된 인연들은 모조리 삭제했다. 비슷한 시기에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하며 다양한 퀴어 단체와 페미니즘 단체를 팔로우하게 되었고, 그걸 기존 인연들이 몰랐으면 했다. 단지 팔로우하는 것뿐인데도 지레 겁을 먹었다. 퀴어 단체를 팔로우하고 좋아요를 누르게 되면 누구든 나를 퀴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명명하면 어떤 여성혐오자가 내게 시비를 걸진 않을까? 실명을 걸고 활동하는 페이스북에서 그건 꽤 실존하는 공포였다. 지방에서 나고 자라 지방의 초중고대학을 나온 나에겐 더더욱. 단체 소식은 궁금하고 주변인들은 내가 거기 관심 가지고 있다는 걸 몰랐으면 싶으니 결론은 ‘에라 모르겠다 친삭!’ 휴대폰 번호도 바꿔버렸다. 왜 그렇게까지? 싶지만 그땐 정말 간절했다. (이 마음을 이해할 사람이 있을까? 너무나 공감받고 싶다.)



오랫동안 수락하지 않은 대학 동기의 팔로우 신청에 수락을 눌렀다.


2022년의 나는 과거와 꽤 다른 사람이 되었고, 그건 내 주변을 둘러싼 관계 덕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속한 사회에서 배제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은 다른 사회를 꾸릴 원동력이 되어줬다. (*스스로 꾸린 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계속 됩니다.) 초중고대학을 통해 알게 된 인연이 전부였던 사회와 내 선택으로 만들어진, 서로 조심스러운 관계 맺기를 지향하는 인연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나를 온전히 드러내도 혐오하지 않는 사람들, 나와 어깨를 맞대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SNS에 새로운 피드를 올린다.



퀴어 퍼레이드 나가서 사람들이랑 방방 뛰면서 행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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