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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국퀴어 Apr 18. 2022

쟤 여자 좋아한대

정한새

나는... 나중에 알았다, 내가 고등학생일 당시 또래 여고생들 사이에서 알아주는 네임드 레즈였다는 것을.

일단 여러분이 오해할까 봐 한 가지만 정정하고 본문으로 들어가겠다. 나는 레즈비언이 아니다. 바이섹슈얼이다. 레즈비언은 여성 동성애자를 의미하고, 바이섹슈얼은 최근까지 여성과 남성, 두 가지 성별을 좋아하는 사람, 즉 양성애자라고 많이 쓰였다. 최근까지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가 가시화되면서 양성애자 역시 그 흐름을 받아들여 개념을 정비했기 때문이다. ‘두 개의 성별정체성(을 가진 사람)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는 사람’이라든가, ‘자신의 성별과 같은 성별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성별을 대상으로 성적 끌림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정의를 주로 쓰는 것 같다. 나는 시스젠더 여성이고, 여성과 남성에게 성적 끌림을 느낀다.

아이고, 맞다. 시스젠더는 무엇이냐 하면 나에게 부여된 법적 성별과 내가 인지하는 나라는 개인의 성별이 일치하는 사람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나는 법적으로 여성으로 분류되고,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2로 시작한다. 00년도부터 태어난 사람 중 법적 성별이 여성인 경우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숫자 4로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어서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나처럼 법적 성별과 인지 성별이 일치되지 않는 때도 있는데, 그런 사람을 바로 트랜스젠더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통계청에서는 트랜스젠더의 비율을 조사하지 않기 때문에 인구 중 몇 명이 트랜스젠더인 지는 알 수 없지만, 2014년 미국에서 조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구 중 2.2~5.6% 정도가 트랜스젠더일 거로 추정한다. 여러분이 정원이 50명인 학과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했다면, 동기 중 최소한 한 명, 최대 5명은 트랜스젠더라는 의미이다.


서두가 너무 길었네요. 하려던 얘기로 돌아갑시다.


중학생 때 나는 소규모의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점심시간에 구령대에 모여 수다도 떨고, 쉬는 시간에 계단에서 시시덕거리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교과서에서 배워서 알겠지만, 중학생 시기는 이차 성징이 활발히 일어나는 때다. 그래서 우리도 한창 성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다. 야한 창작물을 읽는 것도, 그리거나 쓰는 것도 좋아했고, 성감대란 무엇이고 어떤 느낌일까 같은 학구적으로 보이지만 욕망으로 똘똘 뭉친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나눴다. 그 안에는 사랑도 있고 질투도 있고 욕정도 있고 아무튼 모든 것이 짙고 끈질기게 묻어 있었다.

그래서 아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같은 학교 학생들의 이목이 쏠렸나 보다. 그렇게 몰려서 활개 치며 다녀도 선생님들이 뭐라고 하지 않아서일지, 아니면 매번 서로 다른 반의 서로 다른 애들이 틈만 나면 모여서 꼭 붙어 앉아 팔짱 끼고 수다 떨어서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십 대 특유의 예민함으로 우리 사이에 흘렀던 끈끈한 무언가를 느꼈을 수도 있지. 그렇게 지내다 보니 같은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쟤네 이상하다’는 소문이 돌았다. 내가 기억하는 게 맞다면, 소위 ‘논다’는 학생 패거리가 선생님에게 혼날 때 억울해하며 ‘한새 네는 왜 혼내지 않냐, 쟤네 레즈비언이다’라는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선생님이 콧방귀를 뀌며 ‘너도 친구들이랑 모여서 놀지 않냐, 그럼 너네도 레즈냐’라고 했다는데 참으로 맞는 말이면서도 묘하게 편견 아닌지. 그때는 그런 소문이 크게 신경도 안 쓰였고, 당시의 나는 여자면 당연히 여자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편견 가득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 그럼, 사실이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문제는 고등학생 때였다. 내가 살았던 곳은 고등학교를 성적순으로 갔다. 필요에 따라 상향 지원도 하고 하향 지원도 했으나 아무튼 나랑 놀던 친구들은 서로 다른 고등학교로 가게 되었다. 거기다가 나는 아예 다른 지역의 학교로 떠버렸다. 그렇게 3년간 죽고 못 살던 친구들과 헤어져 홀로 낯선 곳에서 서바이벌하다 보니 내가 살던 고향에서 무슨 소문이 어떻게 돌아다녔는지는 알 수도 없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뭣도 모르는 3년을 보낸 데다가 심지어 대학도 서울로 진학해 버려 반강제로 독립하며 지내던 어느 날, 중학교 때 친구를 만나 불쑥 고등학생 때 이야기가 나왔다. 아니다. 솔직히 고등학교 때 얘기를 했던 건지도 기억이 안 난다. 내가 기억나는 건 친구가 했던 말 한마디다. ‘고등학교 때 우리 레즈비언이라고 소문 엄청나게 돌았어.’

그랬어??? 너와 나 말고 그 지역 여고생들이 이미 우리가 퀴어라는 걸 알았어??? 근데 왜 그렇게 다들 정체화 한 번 안 해보고 헤테로가 됐대???


사실 나 말고 많은 여성들이, 그러니까 여중, 여고를 나온 사람들은 이 여중, 혹은 여고의 ‘레즈 소문’을 들어봤을 것이다. 나 자신이 레즈로 짜하게 소문이 났다거나 우리 학교에 누가 레즈라거나, 그도 아니면 아무튼 우리 학교에 레즈가 있다는 그런 소문 말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이런 소문을 가끔 주고받기도 하고, 레즈로 추측되는 누군가를 지목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안다. 정말로 그 소문의 당사자가 레즈비언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런데 학교에서는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를 멸칭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아웃팅’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자신이 퀴어임을 숨기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을 벽장에 가둔다. 게다가 지방의 문제는 우리가 모두 서로 이름만 대면 알 중학교에 다닌 후 우리 모두 이름만 대면 알 고등학교로 진학한다는 것이다. 이름만 아나? 나는 아직도 내가 살았던 지역의 여중, 여고의 위치를 대충 짚을 수 있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교복도 구분할 줄 알았다. 졸업 앨범을 펼치면 두 다리, 세 다리 정도만 건너도 동년배를 다 잡아낼 수 있다. 한 번 동년배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면 고등학교, 길게는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에 그놈의 ‘레즈 낙인’이 은밀하게 따라다닌다.

그런 청소년은 높은 확률로 자책하게 된다. ‘쟤 여자 좋아한대’라는 말은, 여자를 좋아하는 자기 자신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의심하고 불신하게 만든다. 이는 폭력이고 사생활 간섭이며 결과적으로는 개인의 존엄을 침해한다. 낙인이 사라져 ‘사실 나, 너 레즈라는 소문 듣고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는데 오해였다는 걸 알았어’와 같은 거듭된 오해와 일방적인 관계 맺음은 이중의 폭력을 낳는다.

우리나라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을 외면하는 국가이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가장 먼저 경험하는 소수자에 대한 분위기는 경멸과 차별, 그리고 혐오이다. 학교에서는 제대로 된 성교육을 시행하지 않고, 그렇게 무성한 ‘레즈 소문’도 신기하게 대학생만 되면 언제 그런 적이 있었냐는 듯 사라진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의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어디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누구에게 자기 자신을 말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다행히 나와 친구는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시간을 거쳐 대체로 건강한 성소수자 어른으로 자라났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 놓인 지방 퀴어 성소수자들이 많을 것이다. 폐쇄적인 지방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어떻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른이 된 나는, 어떻게 청소년 성소수자를 돕거나 연대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새롭게 시작된 고민이다.


" 출처 : 경향신문, “시선이 더 아파”…몸 아파도 꾹 참는 트랜스젠더, 주영재, 202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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