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브 앤 팝> — 욕망과 공허, 그리고 흐름

성장과 상실의 기록

by 감자씨

일본 최초의 풀 디지털 영화로 알려진 안노 히데아키의 <러브 앤 팝>은 1998년 작품이지만, 여전히 신선하고 낯설게 다가온다. <에반게리온>으로 유명한 안노 감독이 만들어낸 이 영화는, 여고생과 원조교제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내세우면서도 그 안에 ‘성장’과 ‘상실’,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본질적인 테마를 풀어낸다.


메이킹 영상

<러브 앤 팝>은 메이킹 영상이 두 개가 있다. 메이킹 영상에서 안노는 이 영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문제가 본인이 여고생으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실제 여고생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안노가 여러 여성들과 전화 통화를 하는 부분도 엿볼 수 있다.

영화는 대부분 도쿄에서 촬영했고, 오프닝 몽타주와 마지막 신을 찍으러 오키나와에 갔으나 사토라는 촬영 보조의 계속된 실수로 인해 필름을 다 날려버렸고, 결국 석양이 지는 바닷가에서 여자 넷이 노는 모습으로 마무리하려 했던 기존 계획이 변경되어 시부야 강 엔딩이 탄생한 것이다.

러브 앤 팝은 장편 극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수중 신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 일반 캠코더로 찍었다. 두 번째 메이킹 영상을 보면 스태프들이 왜 안노가 러브 앤 팝을 골랐는지 모르겠다며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지, 그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안노는 제작 당시 러브 앤 팝이 가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고 싶어 했다. 다만 자신이 뭘 보고 싶고 관객에게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완벽히 구상한 채로 촬영에 임한 것이 아니다. 꽤 모호하고, 아직 뚜렷한 생각이 있지 않았기에 이를 촬영을 하면서 알아내고자 했다. 또한 안노는 여자 배우 네 명과 자신 사이에 끊임없이 흐르는 물이 있는 것만 같다는 말을 한다.


길을 잃는 법을 배우는 시간, 그리고 성장의 한 페이지

영화는 도쿄를 배경으로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평범한 여고생 히로미는 친구들과 함께 원조교제를 하기로 한다. 그 시작은 단순히 반지 하나를 갖고 싶어서였지만, 이야기는 점점 그가 감당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영화 곳곳에 삽입되는 기차와 물의 흐름 같은 이미지는 시간이 흘러가고, 사람도 흘러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계속 상기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의 촬영 방식이다. 대부분의 장면이 가정용 캠코더로 찍혀 있기에 완벽한 픽션 영화를 본다는 느낌보다는 실제 다큐멘터리 같은 생생함을 준다. 안노 감독이 '가짜 다큐멘터리'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했던 의도 덕에 영화는 마치 우리가 우연히 누군가의 사적인 하루를 훔쳐보는 듯한 기분을 준다. 캠코더뿐 아니라 POV샷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이다. 히로미의 치마 아래에서 위를 향하는 구도, 캡틴 EO과의 원조교제 현장을 완벽한 히로미 시점의 카메라로 설치한 것 등이 그렇다. 또한 다각도의 CCTV로 알아채지 못할 행동까지 보여주는 것은 관객이 원조교제 현장을 방관하며 관음하게끔 유도한다.

히로미와 친구들이 원조교제를 통해 어른들의 세계로 발을 들이는 과정은 보는 내내 불편함을 준다. 그럼에도 영화는 그것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히로미가 느끼는 불쾌함과 공허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이 아이들이 사실은 여전히 '어린애'임을 상기시킴으로써 어른들의 이중성과 가식, 그리고 도덕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여고생 4인방은 노래방에서 아저씨와 보낸 시간과 청포도를 약간만 씹어 뱉은 대가로 반지를 살 수 있는 만큼의 돈을 받는다. 이때 히로미가 돈을 4등분으로 똑같이 나누어 갖자고 하는 장면은 친구들과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길 원하는 히로미의 심리를 엿보인다. 친구들이 자신보다 앞서가는 것에 대한 불안, 혹은 자신이 그들보다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점철되어 이전의 평등한 관계를 잃을 수 있다는 가느다란 불안감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다.

히로미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각자의 삶과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에서 변화의 조짐을 느꼈을 것이고, 그 이질감을 떨쳐내고 싶었을 것이다. 관계가 혹시라도 틀어지거나 달라지는 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격변의 시기에 놓인 고등학생의 심리를 세심히 반영한다.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단순한 원조교제와 그와 관련한 도덕과 선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변화하는 관계 속에서의 두려움, 뒤처질까 봐, 혹은 혼자 남겨질까 봐 느끼는 불안, 그리고 세상은 계속 변하고 흐르는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그런 성장통의 묘사어른들의 위선에 대한 폭로에 가깝다.

히로미는 '결국 모든 것은 변하고 그게 삶이다'라는 관점을 지니고 있는데, 그럼에도 사진을 찍음으로써 현재를 간직하고픈 사람이다. 매일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온갖 사진을 찍어 순간을 포착하고 기록하는 히로미는 돈이 없는 학생임에도 카메라에 쓰는 돈은 아끼지 않는다. 이러한 사진을 찍는 행위는 자꾸만 변화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전의 모습에서 바뀌는 세상의 흐름으로부터의 반항이자 현재를 간직하고픈 마음을 표현하는 적극적 행동이다. 때문에 영화의 후반부에서 남자가 카메라 릴을 빼내는 장면은 결국 이제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붙잡아도 시간은 흘러가고, 관계도 변하며, 히로미 본인도 그 변화에서 예외일 수 없다. 어두운 현실을 깨달은 암울한 결말이라고 읽힐 수도 있으나, 결국 그 또한 성장의 과정이며 상실과 변화로부터 새로운 발전의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러브 앤 팝>은 성장의 순간을 포착한 영화다. 불편하고, 서툴고, 때로는 잔혹하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인 이야기다. 변화의 순간에 놓인 소녀의 시선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겪었을 그 시절의 감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흐르는 물과 이동하는 기차

영화에서 중간중간 계속해서 보여주는 물과 기차는 각기 다르면서도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감독은 하수구 물, 강물 등 물이 흐르는 샷을 자주 삽입한다. 고여있지 않고 자꾸만 어딘가로 흐르거나 떨어져 이동하는 물은 처음에 언급되었던 히로미 본인의 삶에 대한 관점이자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것이다. 이는 특히 히로미가 원조교제를 시작하면서부터 자주 등장하는데, 인물의 변화, 생각의 변화, 행동의 변화 등 처음 있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이전의 히로미와 지금의 히로미가 다르다는 것, 그리고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읽을 수 있다.

물뿐만 아니라 감독이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시각적 요소는 기차다. 기차는 끊임없이 앞으로 가지만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영화의 첫 시퀀스는 아빠가 집 거실에서 장난감 기찻길을 조립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영화의 마지막은 그 기찻길의 완성된 모습과 그 레일을 도는 기차를 보여준다. 이는 계속 움직이지만 결국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이를 반복하는 것을 거실 안에 꽉 차는 기찻길로 나타내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하루의 시작과 함께 시작했던 조립이 하루의 에 완성되고, 이를 다시 내일이 시작되기 전 정리하는 것은 변화와 회귀라는 개념을 더욱 부각한다. 주인공은 영화 초반에 자꾸만 변화하지만 그게 반복되는 게 인생인 것 같다는 말을 한다. 기차가 계속 달려도 결국은 원형 트랙을 도는 것처럼, 우리 삶도 끊임없이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건 아닐까.


그 밖의 비하인드

완벽한 히로미를 찾기 위한 오디션에서 역을 맡기 위해 많은 남자 앞에 선 여자들을 보고 마치 실제로 눈앞에서 원조교제 현장을 보는 것 같았다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마츠오라는 AV감독이 촬영에 참여했고 그는 주로 섹스 신 촬영을 하기 때문에 <러브 앤 팝> 촬영 당시 잦은 컷 수에 놀랐다고 한다.

실제로 원조교제 경험이 있는 여성과 인터뷰가 등장한다. 그 여성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했고 섹스를 할 땐 돈 생각을 한다고 한다.

히로미 역을 맡은 미와 아스미 배우는 노출신을 찍을 때 힘들어서 눈물을 흘리느라 촬영이 잠시 멈추기도 했다.

풀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된 최초의 일본 영화

캡틴 EO는 엄마와의 갈등과 복수심이 깔려있다는 설정이다. 다른 여자들에게 복수함으로써 ‘엄마의 대한 복수’라는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달성하는 캐릭터로, 그것이 이 인물이 (여자와의) 관계를 발전하는 방식인 것이라고 한다.

안노 히데아키는 자신이 망친 일이라면, 즉 그 문제가 본인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라면 어떻게 해결할 지도 알겠지만 외부 요인으로 망가진 것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촬영 보조를 맡은 사토가 실수를 범해 계획이 틀어졌을 때 안노가 했던 말)

그다음 날에 마지막 장면을 다시 찍기로 했지만 사토가 테이프를 들고 달렸고.. 결국 필름을 다 날려 버렸다.. 여자 넷이 시부야 강에서 수영복을 입은 채로 끝내는 아이디어도 있었기에 시부야 강에서 마무리를 하게 되었지만 (다행히) 수영복은 입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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