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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씨 Nov 21. 2024

지금 당신은 당신답게 살고 있나요?

나다운 게 뭐길래

많은 사람들이 던지는 이 질문이 화두가 된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을 것 같다. 먹고살기 힘들 당시 인간들이 본인의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며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할 여유는 없었을 거니까. 문명이 발달하고 문화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을 감싸는 가치관이 생겨나고, 그 가치관과 공동체의 모습이 어우러져 한 사람의 사고방식도 많은 부분을 휘두르게 되었을 것이다. 당장 오늘내일 먹고살 걱정을 뛰어넘어 자아를 인식하고 자아실현을 하려는 목적을 갖게 된 순간 인간은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기기 시작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너무 많은 선택지 앞에 놓인다. 어떤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지, 어떤 일을 통해 돈을 벌 것인지, 어떤 사람들을 만날 것인지, 어떤 신념을 갖고 살 것인지, 어떤 사회에 살 것인지. 과거에 사람들은 태어난 곳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고 살았던 것과 반대로 지금은 어떤 나라로 이민을 갈지까지 선택이 가능하다. 기술의 발달로 지구의 체감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있고, 점점 좁아지면서 역설적으로는 넓어지는 본인의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를 인식했을 때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남들과의 비교를 통한 본인이 속한 사회에서의 위치. 상대적 진리와 절대적 진리. 수많은 개념과 다양한 삶의 형태는 종종 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을 묵묵히 견뎌내기 위해서는 ‘결국 본인을 가장 잘 알아야 한다’라는 결론으로 도달하기도 하는데, 이때 가장 유효한 질문이 ‘나다운 건 뭘까’라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본인이 선택할 수 없는 유전자를 지닌 채로 세상을 마주한다. 그것이 바로 고유한 특성이다. 하지만 그 고유한 특성이란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지나치게 방대하고 모호하다. 또한 사회가 변하고 세상이 변화하듯 사람도 변한다. 내가 어릴 때 내성적이었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내성적일 거라는 보장은 없다. 어떠한 계기든, 자연스러운 변화이든, ‘변화되는 나’ 또한 ‘나’ 일 것이다. 그러면 만약 내가 외향적인 사람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면, 과거의 ‘내성적인 나’는 ‘나’가 아닌 게 될까?


그렇게 말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과거와 현재는 이어지고, 지금의 나는 어느 순간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과거의 모든 순간과 경험이 이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적절한 비유가 아닐지 모르겠지만, 공부를 안 해서 못한 사람이 받은 처참한 수능 결과와 평소 꾸준히 노력해 온 사람이 OMR 카드에 답을 밀려 써서 나온 수능 결과가 혹 같은 점수일지라도 그 결과물만을 보고 둘을 동일하게 평가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나다운’ 모습을 찾으려고 할 때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것이 바로 나다운 모습이라고 정의하려는 시도는 중요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어릴 때 모든 것을 경험하기란 불가능하며 아직 신체적, 정신적인 성장기일 때 잠깐의 모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예시로, 단 한 번도 드럼을 배워본 적 없는 사람이 서른 살이 되어 우연한 계기로 드럼을 접하게 되었는데 타고난 박자감으로 뛰어난 드러머가 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더라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만약 주변에 지지해 주는 사람이 충분히 있었다면 자신감 있게 살아갈 사람이 혹독한 상황에서 본인을 낮추기만 하는 부모나 선생을 만났다면 그 사람은 본인이 원래 자신감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의 성격에 대해 정의 내릴지도 모른다.




그럼 결국 ‘나다움’은 의미 없는 허상의 개념인가? 그건 또 아니라고 본다.

‘나’를 정의하는 것들은 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 이외에도 정말 많은 것들이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 부모님께 영향을 받은 가치관과 사고방식, 나고 자란 지역에서 배운 언어와 문화, 나의 주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여러 우연과 선택이 만들어낸 현재 나의 위치 등, 이 모든 것 중 ‘나다운 것’은 무엇일까.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그 말은 결국 한 개인은 주변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닐까. 그 주변에 속한 개인은 내면의 변화와 외부의 변화의 모든 흐름 속에 존재한다. ‘나’는 변한다. 그래서 ‘나답게’도 변할 수 있다.


나를 구성하는 여러 특징을 강화하기도 하고, 새로운 면들을 만들어가기도 하고, 때 묵은 특질을 버리기도 하며 흘러간다. 결국 거시적인 관점으로는 내가 역사의 흐름 속 한 개인이며, 이 시대의 이 환경에서 어떤 모습과 생각으로 나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지, 어떤 사람들과 교류하는지, 어떤 공부와 일을 하며 어떤 신념을 지니고 살아가는지를 깨닫는 것.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그 모든 것이 어떻게 나의 삶의 태도로 이어지는지를 인지하는 것이 나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시작이자, 어쩌면 끝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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