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퀴어 로맨스의 엔딩은 암울한가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을 보고

by 감자씨

퀴어물의 엔딩이 좋게 끝나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깊었을수록 그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 평론가와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고 인지도가 높은 퀴어 영화로는 대표적으로 <캐롤>, <콜미바이유어네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등이 떠오른다. 이 세 영화의 공통점은 사랑했지만 끝내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해피투게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브로크백 마운틴> 등 퀴어 영화치고 한국 사람들이 많이 접했을, 소위 말해 성공한 영화들은 ‘그렇게 그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 거랍니다~’라는 느낌의 엔딩이 이성애 로맨스에 비하면 특이할 정도로 드물다.


물론 밝은 결실로 끝나는 것들도 있다. 드라마로 예를 들면 <하트스토퍼>, <시맨틱 에러>, <필굿> 등이 그렇다. 다만 이성애 로맨스물의 경우 서로 관심 없던 남녀가 어떠한 이유로 사랑에 빠지고 중간에 고비가 찾아오지만 끝내 사랑을 되찾거나 지켜내는 해피엔딩이 대중적이라면, 동성애 혹은 퀴어물의 경우는 어딘가 슬픔과 비애가 묻어있게 마련이다.


왜 그럴까? 그건 동성연애의 현실 반영일까, 혹은 퀴어물에서 역경, 고난, 사회적 장벽 등으로 인한 비극을 기대하는 관객들의 수요에 맞춘 스토리텔링일까.


첫 번째 이유로는 자본의 문제다. 우선 시스젠더 이성애자와 그 나머지(LGBTQ+)를 각각 주류와 비주류라고 나눈다면, 주류에게 통하지 않을 영화는 투자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상업성도 떨어진다. 때문에 대중성을 확보하고 주류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 관객에게 감정을 건네는 방식이 종종 동정심과 연민, 그리고 안타까움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퀴어의 사랑은 여전히 쉽게 축복받지 못하고, 그것이 서사의 끝에서 비극의 형태로 자리 잡는다.


또 다른 이유는 퀴어가 단순히 행복한 사랑을 하기에는 녹록지 않은 현실이기에 이성애자 로맨스물과 같은 플롯으로는 서사적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들은 이미 동성애자로서 이 사회를 살아가는 것도 벅찬 면이 있다. 본인 스스로의 성지향성을 인식하고 스스로 받아들이기까지 여러 내적 갈등을 겪게 되고, 여전히 끝나지 않고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설령 정체화 후 용기를 내어 사랑을 시작하려고 한들, 거기서부터가 또 다른 문제의 시발점이다. 우선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제한적이다. 오늘날 데이팅 어플이 만남의 희소성을 대폭 해소해 주고는 있지만, 여전히 동성애자가 수적으로 적다는 점과 커밍아웃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의 만남은 낮은 확률의 싸움이다. 사랑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둘을 둘러싼 외압을 결코 무시할 수 없기에 퀴어 로맨스는 걱정 없이 행복한 미래를 그리기 어려운 감정의 밀도를 띨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 사회는 LGBTQ+에 대한 인식도, 제도도 여전히 부족한 만큼 성소수자 커플에게는 방해물들이 산처럼 쌓여있는 것이 현실이며,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배타적인 태도를 감내하고 결혼을 한다고 한들(법적 결혼이 한국에선 아직 불가하지만) 행복한 미래가 쉽게 그려지지 않을 것이다.


<대도시의 사랑법> 또한 이러한 면이 있다. 사실 드라마를 작년 가을에 봐 놓고서는 이제 와서 글을 쓰는 게 조금 웃기지만, 어쨌든 이 드라마를 보면서 왜 퀴어 로맨스는 암울한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을까..라는 씁쓸한 마음 가짐으로 제목만 써 두고 서랍에 묵혀뒀었다.


그럼에도 <대도시의 사랑법>은 분명 특별하게 다가왔다.


『대도시의 사랑법』이 만든 균열과 가능성

이 드라마는 동성애자 남성 '고영'의 연애 이야기를 다룬다. 특이점은 한 사람과의 짙은 사랑이 아니라 흔한 청춘의 모습처럼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고증을 중심에 둔다는 점이다. 총 다섯 명과의 연애가 에피소드식 구성으로 전개되며, 고영이라는 주인공뿐 아니라 그의 친구들과 그가 거쳐가는 남자들까지 자연스럽게 여러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게이’라는 극 속 인물들의 다양성을 확장시킨다.


예를 들면 고영의 두 번째 사랑이었던 노영수.
사진 찍는 것, 클럽 가는 것, 패션에 신경 쓰는 것, 남자 둘이 파스타를 먹는 것 등 영이 좋아하는 것들을 다 불편해하는 사람이다. 영은 영수에게 끌리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영의 존재를 부정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영수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내치고 외롭게 만든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본인이 퀴어이면서도 사회적 지위나 ‘정상성’을 향한 집착 때문에 오히려 퀴어를 혐오하게 되는 인물들을 현실에서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영수라는 캐릭터가 담고 있는 현실적인 복잡성과 자기모순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세상 속 우리 둘'이라는 주류의 시선을 따르지 않는다. 대신 퀴어가 중심이 된 고영의 세계, 즉 주변 인물 다수가 퀴어인 환경을 보여주며 게이라는 정체성을 특별하게 소비하거나 강조하지 않는다. 그저 복합적인 한 사람으로서 존재하며 살아가는 고영의 이야기를 통해 게이라는 정체성보다는 더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이야기로 나아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으니까”

고영이 만난 다섯 남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단연 규호다. 규호는 드라마 포스터 속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으니까”라는 대사의 주인공이자, 고영이 처음으로 '카일리(HIV 감염 사실)'를 고백한 대상이기도 하다. 카일리라고 이름을 붙이며 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애증의 관계로 의인화한 방식은, 병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삶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이처럼 단순 병뿐만 아니라 관계, 고백, 수용, 공존이라는 주제들을 소설과 드라마 전반에 걸쳐 조용히 투영한다.


규호는 영의 모든 것을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사랑이 가득하고 순수한 사람이다. 영도 분명 그런 규호를 사랑했다. 다만 영은 규호와의 연애를 완전히 행복하다고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규호와의 연애를 소설에 담을 때 그와의 일상을 ‘평범하다’고 서술하며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한탄하듯 적은 것을 보면, 영이 바랬던 것은 불타는 설렘이지만 규호와의 관계는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영수가 영에게 했던 것처럼 영이 규호에게 상처 주는 말들을 내뱉으며 상처가 전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규호와 이별한 후 고영이 자주 떠올리는 장면들은 그들의 가장 평온하고 행복했던 순간들이다. 전등에 다른 소원을 모두 지우고 '규호'라는 그 2음절을 적은 영은 사랑을 원했던 것이고, 적어도 그 시점에 그에게 사랑은 규호였다. 사랑이 넘치지만 그 사랑을 발산할 수 없고 미래가 자꾸 막히는 것. 그럼에도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찾아 나서며 사랑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결국 제목이 말하는'대도시의 사랑법'이 아닐까?

그 이후의 이야기는 알 수 없다. 모두의 사랑이 그렇듯.



‘카일리’라는 자신의 일부

개인적으로는 고영이 카일리의 존재를 털어놓은 시점부터 드라마가 급격히 암울하게 느껴졌다. 주인공의 '행복한 로맨스'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디어에서 HIV와 함께 살아가는 퀴어의 삶을 담담히 그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성공일 것이라고 느꼈다. 흔히 완치가 불가능하다고만 알려진 병이 일상에서 문제없이 공존 가능하다는 사실은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움이 남는 지점도 있다. 규호와의 연애에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한 요소가 HIV 감염이라는 설정은 아직도 일부 대중에게 “게이 = 에이즈”라는 부정적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HIV 감염은 남성 간 성관계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다양한 경로로 누구에게나 전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기에, 현실을 그려내는 동시에 그 재현의 방식이 어떤 사회적 인식을 반복하거나 고정시키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로맨스 빠진 우정의 형태

이 드라마가 좋았던 또 다른 이유는, 남녀 간의 비연애적 관계, 즉 깊은 우정을 진지하게 다뤘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꽤나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하는, "남녀 사이에 친구 없다"는 말에 <대도시의 사랑법>은 대놓고 두 남녀의 동거 일상을 그림으로써 완전히 반박한다. (영과 미애의 관계는 드라마보다 더 비중이 더 높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연애가 아닌 연대와 지지의 형태로 존재한다. 고영이 게이 남성이라는 사실이 그 관계를 ‘가능하게’ 만든 것도 맞지만, 남녀 사이에 친구가 없다는 생각은 고영과 그의 게이 친구들과의 관계 또한 부정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또 다른 주제니까 넘어가겠지만, 이처럼 <대도시의 사랑법>은 보편적인 이성 중심적 관계 구도에 균열을 낸, 사랑과 우정의 다채로운 가능성을 발견시킨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좋아해요, 당신이라는 우주를요”
"난 보고 싶다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진짜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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