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스미다 - 광양매화마을
임진왜란과 이순신을 그린
[칼의 노래]라는 김훈의 소설은
첫 문장을 펼치자 마자
호흡을 거르게 한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임진년에 시작된 전란의 고통이
구비구비 깊게 배어 있을 마을과 어귀.
그 고통을 잠시 미루기라도 한듯
작가는 덤덤하게 남도의 섬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묵직한 묘사로 소설을 시작한다.
이 산하의 아름다움을 얼마나 흠모하여야
고통을 가늠할 수 없는 전란의 서막을
이토록 담담하게 써 내려갈 수 있을까.
그 담대함에 시샘을 금할 길이 없다.
전란의 고단함 속에서도
덤덤하게 꽃을 피우던 남도의 섬들.
그 계절은 지금도 윤회하여
오늘 이렇게 남도의 봄을 펼쳐 낸다.
이 꽃들은 얼마나 긴 세월을
이 계절과 함께
그 생의 운명을 수없이 펼쳐 내었을까.
그 윤회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김없이 술잔을 나누며
이미 누군가가 취해갔을 꽃잎 아래서
다시 술잔을 기울인다.
이 고단한 유희도
계절의 켜와 함께하여
천년의 세월을 담아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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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봄을 찾아
일요일 새벽짐을 챙긴다.
내가 때때로 챙겨야 할 "일요일 새벽짐"이라면
열에 아홉은 등산을 위해 꾸리는 배낭이다.
가방 속에는 산행 중 걸터앉아 마실
술 한 병 하나가 자리를 잡는데,
오늘은 가야 할 길이 멀고
걸터앉을 자리도 많은지라 하나를 더 담는다.
서울에서 남쪽으로 4시간여를 달려
매화 가득한 어느 산 아래 마을에 닿았다.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을 바라보던 이 산은
허리춤이 제법 넉넉하여
강 어귀에서 올려다본 풍경과는 사뭇 다르게
산 허리마다 하얀 매화꽃을 지천으로 품었다.
형형색색의 옷을 차려입은 우리들은
키 작은 팔색조가 부지런히 짝을 찾아 나서듯
총총걸음으로
술잔을 나누기에 분위기 좋은 곳을 찾아
그 아래 꽃잎처럼 잔을 펼친다.
술은 술술 잘 넘어가기에
술이라 부를 정도인가 싶을 만큼
달달하게 포도청을 넘어 들어간다.
술 한 모금에 "캬~" 하는 추임새가 붙는다면
그 나이를 실감한다, 하는데
오늘, 이 투박한 감탄사는
지난 겨우내 봄을 기다려온 이들이
봄에게 건네는 안부 인사처럼 다가온다.
더디게 찾아온 봄의 속도와는 다르게
꽃잎 아래의 시간은
어느새 훌쩍 해를 산허리로 넘겼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 봄의 무게를 안은 채
밤새 앓았다.
시간을 거슬러
남도에서 먼저 봄을 맞이하고 온 기분이다.
이렇게 도심의 일상을 거닐다 보면
시나브로 남녘의 바람이 거리 곳곳에 가득 닿아
서울에도 어느새
활짝한 봄이 가득할 게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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