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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림 Apr 26. 2022

우리 아이 그림 잘 그리나요?

미술학원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TOP 3


우리 아이 그림 잘 그리나요?

 상담 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기도 하고 실제로 가장 많이 궁금해하실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냈으니 그림 실력이 늘고 있는지 물어보시는 게 당연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위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떻게 답변드려야 할지 때로 망설여집니다. 왜냐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잘 그린다'와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건 다른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어떤 사물이나 물체를 똑같이 재현할 수 있다’는 것으로 관용화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진처럼 똑같이 그릴 줄 알면 와~ 저 사람 그림 진짜 잘 그린다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 저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부모님이 아이를 학원에 보낸 이유를 먼저 생각하고 그에 맞게 답변드리려 합니다. 아이가 졸라맨이 아닌 실제 사람처럼 그리길 바라셨다면 코에 콧구멍도 그리고, 손가락과 발가락 10개씩 그리기 시작한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혹 수채화를 잘하길 바라셨다면 어디까지 숙달되었는지, 어떤 부분에 있어 미흡한지 말씀드리고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여드립니다.



 제가 가르치는 한 학생이 있습니다. 이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가 꿈을 이루고자 뒤늦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요. 이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알 수 없는 그림에 대한 열정이 느껴져 저도 처음 그림을 시작했을 때의 마음이 샘솟곤 합니다. 열심도 있고 눈썰미가 있어서 그림 그리는 스킬은 알려주는 대로 잘 흡수하는 학생이었습니다.

 다만 지난 몇 달간의 수업 중 집중했던 것은 그림 그리는 스킬보다는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 개념에 대한 재정립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극복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했던 것이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생각의 결과물이 그림일 뿐인데, 생각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수업 시간마다 했던 질문이 있습니다.

Q. 나는 어떤 사람인지?
Q. 나는 왜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Q. 나는 이 그림을 왜 그리고 싶은지?


 처음 한, 두 달 동안은 위 질문을 가지고 대화가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생각을 안 해봤다고 합니다. 이제라도 생각해보자 이야기하니 난감해하며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돌아보며 자서전을 쓰자 이야기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이야기가 제가 가르치는 학생만의 이야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ebs 다큐프라임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를 본 적이 있습니다. 2014년도에 방영한 다큐이지만 우리나라 교육의 실태에 대해서 재고할 수 있어서 지금도 참고하기에 좋은 자료인데요. 그중 5부작에 인상 깊은 실험들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실험은 지정된 한 학생이 대형 강의에서 지속적으로 교수님께 질문을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실험이 시작되었습니다. 보통 수업이 고요한 가운데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지정된 학생이 계속 질문을 하니 주변에 있는 다른 학생들이 수군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질문하는 학생을 보고 비웃음을 짓고 짜증을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질문하는 행위가 불쾌하고 불편하다는 걸 표현하는 거죠. 충실하게 질문했던 학생이 수업 후 인터뷰를 하는데, 뒤통수가 따가웠다고 합니다.


 또 다른 실험에선 중학교 도덕 시험 문제을 푸는 실험자들이 등장합니다, 지금의 우리들이 봐도 말이 안 되는 문제가 나오고, 정답이 없을 수밖에 없는 질문에 정답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체로 사람들의 일생에서 인생의 꿈과 행복은 언제 결정되는가?"라는 문제가 나옵니다. 객관식 항목으로 1번은 10대, 2번은 20대, 3번은 30대, 4번은 40대, 5번은 50대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과연 정답은 몇 번이었을까요?
 


 저희는 알게 모르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받았던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지게 된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자유롭게 질문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어느 순간 생각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모습을 가르치는 학생들에게서 발견하기도 하고 제서 발견하기도 합니다. 다만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하려고 노력할 뿐이지 똑같습니다.


 생각의 변화가 행동뿐 아니라 그림의 변화에 있어서도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그림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뿐이고, 글 쓰는 사람은 글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며,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전합니다. 도구가 자신의 목적이 될 순 없는데 미술 교육에 있어서는 주객이 전도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우리 아이 그림 잘 그리고 있나요?


 자신의 꿈을 좇아 그림을 그리겠다는 학생에게 스킬만 알려주고 내 할 일 다 했다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와 함께 있는 동안에는 최대한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 선한데, 이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있는 사람이 된다면 자립해서 그려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정말 잘 그리는 게 뭘까요? 우리는 상당 부분 투자 대비 빠른 결과를 얻길 바랍니다. 결과는 눈에 보이는 수치나 작업물을 통해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객관화할 수 없는 그림에 대해서도 똑같이 그릴 수 있는지 여부로 '잘 그린다'는 것의 기준을 삼아 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손가락도 그리고 사람처럼 그리는 것도 잘 그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 그린다는 것이 똑같이 그릴 줄 안다는 것의 동의어로 쓰일 순 없다고 봅니다. 잘 그린 그림의 정의가 아이들의 교육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주제가 아닐까 합니다.


 당장의 그림 실력보다 인성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아이가 학원에 왔을 때 친구들을 대하는 모습이 어떤지, 수업 중 그림을 그리는 태도가 어떤지, 그림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여부에 대해서 물어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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