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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림 Apr 04. 2022

입시 미술학원에서 가르치는 것

기술일까, 그림일까

 가끔씩 학원가를 지나치다 보면 미술학원 앞치마를 하고 마실 나온 학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앞치마에 찍힌 로고를 보면 어디 미술학원을 다니는지 알 수 있는데요. 저는 오늘도 그 모습을 유심히 봅니다. 남의 이야기 같지 않기 때문이에요. 저도 일찍이 예고 준비를 위해 입시 미술학원을 다녔습니다. 아마 그 학생들도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그림을 열심히 배우고 있을 겁니다.


 입시 미술학원 다니던 시절을 생각해보니 동기들과 추억이 많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원 주변에는 유명한 카페 거리가 있어서 연예인들이 가끔씩 촬영하러 오고 그랬어요. 하루 종일 학원에 갇혀있다가 연예인 00이 근처에서 촬영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쉬는 시간 먼발치서 보고 오곤 했습니다.

 점심시간이 40분이었어요. 그래서 학원 1층에 있던 분식집에 가거나 미리 배달시켰습니다. 나중엔 분식집에서 조미료를 너무 많이 넣길래 편의점 도시락을 까먹었습니다. 수업이 자정에 끝나서 늘 어머니가 데리러 오셨어요. 가는 길에 짜장 맛집이 있었습니다. 24시간 열던 곳이라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한 사발 먹고 귀가했습니다. 새벽에 야식은 정말 맛있잖아요?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맛있게 먹고 어머니는 그런 저를 안타깝게 보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당시 하루 종일 그림 그리다가 허리 디스크에 걸렸었거든요. 잊지 못할 기억들입니다.






 돌아보니 제가 입시 미술학원에서 배운건 그림 그리는 기술이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특정 미술 대학을 위한 입학 기술이었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단 꿈을 이루기 위해 갔는데, 전반적인 그림 그리는 기술을 배운 것도 아니었죠. 지금은 어떨까요? 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입시 미술학원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에는 학생이었고 이제는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서 있는 제겐 참 마음 아픈 일입니다.


 현재의 입시 미술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반 대학처럼 미술대학마다 입학을 위한 실기 시험 요강이 다릅니다. 일례로 A대학은 주어진 주제에 대한 자유 표현, B대학은 정물 수채화, C대학은 인물 수채화를 요구하기에 미대 입시생들을 각자 희망하는 대학 실기 요강에 따른 입시 미술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니 입시생들은 목표한 대학에서 요구하는 기술 위주로 배우게 됩니다.


 학생들은 합격률이 높은 학원을 찾아갑니다. 그러니 입시 미술 학원에선 조금이라도 더 많은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광고에 힘쓰게 되고 성과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과인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속성으로 입시 미술을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그런 그림을 입시 미술 연구작이라고 하는데, 학원마다 많은 학생들이 합격 기준으로 삼고 따라 그리려고 노력합니다. 자연히 같은 학원 입시생이라면 너도나도 비슷한 스타일로 그립니다. 처음 배울 때부터 주입식이니 어느새 자신만의 개성과 독창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정적인 부분도 빼놓을 수 없죠. 시험을 앞두고는 매 달 기백만원의 원비와 노력,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오로지 입학을 위한 기술을 배우는데, 합격은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입시 미술학원 다니는 것의 장점이 아예 없을까요? 준비 기간이 짧다면 합격률을 생각해서 가는 것이 좋겠죠. 수능처럼 정해진 시간 내에 그림을 완성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 되어 있으니까요. 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그림 성적을 확인할 수 있고, 빠른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리면 그래, 뭐 대학 가려면 어쨌든 입시 미술 학원 가야겠다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고려해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대형 입시 미술학원이 합격을 보장하진 않습니다. 비슷한 스타일로 그린 그림들이 시험에서 많이 탈락하기 때문에 오히려 학원 안에서도 경쟁이 심한 편입니다. 그러니 가야 한다면 입시미술학원이지만 본인의 특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곳이 유리할 수 있습니다. 보통 학원에 등록할 때 지인소개나 검색을 통해서 몇 군데 상담 후 결정하시는데요. 미대 졸업생들은 이미 사회에 많이 나와있는 상태라 공급이 많은데, 수요는 점점 줄어드는 가운데 경쟁이 심해졌습니다. 광고만 믿고 등록했다간 낭패를 보는 경우가 생깁니다. 학원비도 학원과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라 직접 상담받고 발품 팔아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까지 배운 게 그림이 아니라고요?



  입시 미술 학원을 거쳐 대학에 가면 가장 먼저 듣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 많은 미대생분들이 동일하게 들으셨을 거예요. 지금까지 학원에서 그렸던 것은 그림이 아니니 버려야 한다는 말인데요. 알쏭달쏭합니다. 분명 학생들은 그림을 그리고 입학한 건데요.


 실제로 입시 미술만 배워서 입학한 친구들이 입학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자유 주제로 그림 그리는 것입니다. 갑자기 백지를 주고 그리라고 하니 당황스러운 거죠. 지금까지 본인이  그려야 하는지,  그리고 싶어 하는지 생각  해봤거든요. 더군나 학원에서 주입받은 기술을 버리기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처음 그림 그릴  학원에서 배운 대로 손이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습관처럼 나도 모르게 학원서 그렸던 스타일로 생각하고 따라 그리고 있습니다. 목숨 걸고 배운 것을 이제는 잊기 위해 한참을 고생해야 합니다.  부분을 교수님들은  알고 계십니다.


 입시 미술학원의 가장 큰 문제는 대학만 바라보고 교육한다는 것입니다. 입시 미술학원이니 당연하다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학생들의 인생은 대학 입학을 끝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에게 입학도 전에 책임질 수 없는 것을 교육합니다. 그리고 그 교육에 대한 결과와 책임은 전부 학생에게 책임을 맡기 웁니다. 교육자로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단연 시스템의 문제도 부인할 순 없습니다.


 이 모든 정황은 미술계의 관행으로 굳어진 것으로 알지만 침묵하는 일입니다. 기득권을 갖고 있는 경우 자신이 잡고 있는 것을 놓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과는 별개로 기존의 관행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입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루트의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예술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점차 거세질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미대를 나오지 않아도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만의 콘텐츠로 온라인 커뮤니티나 플랫폼을 통해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고 이를 통해 수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어느 부분에서든 경쟁이 치열하니 자기만의 콘텐츠를 준비하기까지 인고의 과정이 필요할 겁니다. 혹여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고, 작가 활동을 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기술은 배워둘 필요가 있습니다. 기술 습득이 필요한 경우 면대면 코칭을 받으시는 게 빠를 수 있습니다.


 제가 미술 전공할 때만 해도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그림 그릴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주변에도 집안 사정으로 그림을 포기했던 친구들이 있었는데요. 이제는 특정인들만이 아닌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문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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