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앞서지 않아도 행복한 아이들」이란 책을 읽으며 얼마 전 다녀온 둘째의 공개수업 날이 기억났다. 이 책은 저자가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아이들을 키우며 느낀 양국의 교육체계를 비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교육에 대한 생각들이 나와 비슷해서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았는데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 중에 하나가 바로 공개수업에서 느낀 두 나라의 차이였다.
저자는 한국 공개수업에 갔다가 아이들이 말하는 방식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 짜리 학생들이 '저~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이렇게 생각합니다.'처럼 찍어낸 듯 똑같은 형식으로 말했다고 했다. 반면, 프랑스의 아이들은 삐딱하게 앉아 다리를 흔들거리면서 '음, 그러니까 내 생각은... 그게, 아 뭐였지, 생각이 잘 안 나는데, 그러니까 좀 도와줘요.'라며 자신의 친구들과 나누는 말투로 평소처럼 이야기한다고 했다.
내가 둘째의 공개수업에서 본 광경도 저자가 본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수업 주제는 각자의 꿈에 관한 내용이었다. 마지막 순서로 한 명씩 돌아가면서 본인들이 미리 적어둔 꿈을 발표하는데 하나같이 "저의 꿈은 00입니다. 세계의 00에 대해서 공부할 겁니다. 여러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와 같은 세 마디로 발표하는 것이 아닌가. 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세계의 무언가를 공부해야 하는 걸까..ㅎㅎ 특히, 아이돌이 되겠다는 한 친구가 세계의 춤에 대해서 공부하겠다는 것을 보고 어이없어서 웃음이 났다.
우리 둘째의 꿈은 현재 없다. 예전에 제빵사가 되고 싶었는데, 마음을 바꿨단다. 공개수업 며칠 전에 담임교사에게 자기 꿈이 바뀌어서 현재는 없다고 말하자 예전 꿈을 그대로 발표하면 된다고 답했단다. 나는 아이에게 느끼는 그대로 꿈이 바뀌어서 현재는 없다고 발표하면 된다고 말했다. 고민하던 딸은 공개수업에서 결국 부끄러워하며 '저의 꿈은 제빵사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빵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행복을 주고 싶습니다.'라고 발표했다.
우리 아이의 교실 학생 이십여 명 중 유일하게 '저는 꿈을 아직 못 정했어요.'라고 씩씩하게 발표하는 아이에게 나는 누구에게 보다 큰 박수를 쳐주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아이는 평소에 선생님한테 자주 꾸중을 듣는 아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천편일률적인 교육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말하는 저 아이가 싸워야 할 벽이 많겠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로봇이 말하는 듯한 딱딱한 말투로 정해진 틀에 넣어진 꿈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어째서 부모도 건드리지 못하는 아이의 꿈을 담임교사가 정해줄 수 있는 걸까? 그런 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도록 교육받으니 사고력을 키우자고 도입한 논술을 따로 돈 주고 배워야 하는 사태가 오는 게 아닐까. 공개수업 며칠 전에 아이에게 혹시 요즘에도 발표순서를 정해서 연습하냐고 물어보니 그런 건 없다고 했다. 내심 기대했던 나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공개수업을 보고 씁쓸함을 안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