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 역시 피아노를 배우고 좋아했지만 콩쿠르라는 걸 나갈 기회가 없었다. 내가 다니던 피아노 학원 원장들은 그런 데 열의가 없었던 건지 피아노 선생님한테 그 단어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콩쿠르에 나간다는 이야기를 했었고, 친한 친구가 거길 나간다기에 응원차 구경 갔다가 친구 아빠한테 중국집에서 볶음밥 접대를 받기도 했다.^^ 무대에 나가서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피아노를 치는 친구가 부럽기도 하고, 나보다 특별히 잘 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왜 쟤는 나가고 나는 나갈 기회가 없었나?' 하는 단순하지만 복잡한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내 아이가 태어나면서 피아노는 무조건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첫째가 일곱 살이던 해 여름부터 일주일에 한 번 오시는 선생님에게로부터 레슨을 시작해 이사를 다니면서도 꾸준히 피아노 학원에 보내고 있다. 아이는 뭘 시키면 싫다는 소리는 거의 하지 않는 편이라 묵묵히 피아노를 배워나갔다. 내가 봐도 잘 치는 편은 아니지만 꾸준히 배워서 이제 체르니 30번의 앞부분 진도를 나가고 있는데, 언젠가부터 피아노 치는 게 재미있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니 대견하고 뿌듯했다.
몇 달 전, 딸은 피아노 학원에서 콩쿠르와 연주회가 얼마 후에 있을 거라며 신청할 사람은 하라고 했다며 내게 안내문을 내밀었다. 특별히 관심이 없던 딸에게 나는 대리만족의 욕구였는지 이것도 추억이 될 테니까 한 번 나가지 않겠냐고 권유했다. 콩쿠르와 연주회 두 개 모두 참가가 가능하고 둘 중에 하나만 신청해도 되는데, 며칠을 고민하던 딸은 콩쿠르만 나가겠다고 했다. 나는 의아한 마음이 생겼다. 나라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거면 연주회를 택했을 텐데 왜 딸은 콩쿠르를 선택했을까?
며칠 후 피아노 선생님과 통화를 하면서 딸이 그 선택을 한 것에 선생님의 지도가 있었나 궁금해서 물었더니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ㅎㅎㅎㅎㅎ 그러게요. 어머님. 저도 되게 의외였어요. 보통 다른 애들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콩쿠르는 부담이 된다고 연주회를 선택하거든요.
딸의 취향이 범상치 않다는 건 항상 느끼던 거였지만 너무 웃겼다. 아이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콩쿠르는 등수가 매겨지는데 연주회는 그냥 연주하면 끝이라는 게 대답이었다. ㅎㅎ 뭐, 선뜻 이해하긴 힘들었지만 그 애의 선택을 존중했다.
콩쿠르가 있기 두 달 전부터는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했다. 매일 한 시간씩 있던 레슨 시간은 두 시간으로 바뀌었고, 콩쿠르가 임박하면서부터는 토요일에도 수업을 했고 일주일에 한 번은 세 시간씩 레슨이 이어졌다. 힘들 법도 한데 항상 방글방글 웃으면 피아노 학원을 다녀오는 딸이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했다. 해가 짧아져 두 시간 수업을 한 후에 집에 올 때는 어두워졌는데, 어두울 때 다니니 재미있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몸이 조금 안 좋은 것 같아서 쉬라고 해도 괜찮다며 꿋꿋하게 연습을 다녀왔고, 세 시간이나 레슨이 이어지는 날에도 선생님이 준비해둔 간식이 맛있었다며 긴 레슨이었지만 힘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가 피아노를 배운 기간에 비해, 그녀의 연습시간과는 별개로 가끔 집에서 치는 피아노 실력은 그리 훌륭하진 않았다. 나도 어렸을 때 배우기도 해서 익숙한 곡이었는데 '내가 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럽진 않았다. 피아노의 악상은 거의 무시가 되고 있었고 어렵지 않은 흐름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을 자꾸 틀렸다. 심지어 콩쿠르 당일 아침에 집에서 연습했을 때조차 몇 번을 틀려서 참가에 의의를 두자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안내문에 드레스 대여 이야기가 있고, 내가 본 유일한 콩쿠르에서 친구도 드레스를 입었기에 당연히 우리 딸도 드레스를 빌려서 입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콩쿠르 삼일 전 선생님이 보낸 문자에 '사복도 괜찮습니다.'라는 글귀가 있었다며 딸에게 잘못 말해서,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치마를 입은 적이 없던 아이는 원피스를 입을 거라고 말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가 그제야 나는 그야말로 분노의 검색을 통해 당일 발송이 되는 원피스, 구두, 타이즈를 주문했고 문제없이 배송되어 콩쿠르 당일에 무사히 아이에게 입힐 수 있었다. 어쩌면 그 애의 인생에서 마지막 콩쿠르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본인이 입고 싶은 옷을 입히고 싶었고, 사진으로 남을 예쁜 꽃도 미리 예약해두어 콩쿠르에 참가하는 아이가 훗날 즐거운 추억으로 뒤돌아보길 바랐다.
콩쿠르 며칠 전부터 아이는 가끔 그 애 답지 않게 '엄마, 조금 긴장돼요.'라는 말을 하곤 했다. 콩쿠르 당일 아침에도 그 말을 할 정도로 긴장을 하긴 했지만, 새로 산 원피스를 입어보며 본인이 너무 예쁘다며 자기는 1등은 못해도 2등은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그 애다운 근자감을 자랑했다. 어차피 이미 난 그 애의 실력을 알아버렸고, 콩쿠르에서 본 다른 아이들의 연주를 보자 우리 아이가 2등 할 일은 전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학년이라 그런지 확실히 그전에 있던 저학년의 연주와는 다르게 멋지게 느껴질 만큼 잘 치는 아이들도 꽤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참가자가 많다는 이유로, 3분가량의 분량을 연습해간 아이는 1분 경과를 알리는 종이 치자 연주를 멈추고 무대를 내려와야 했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연습한 부분을 모두 보여줬으면 좋았으련만 너무 짧았던 무대 경험이 아쉽게 느껴졌지만, 연주한 부분에서는 하나도 틀리지 않음에 위안을 삼았다. 무대를 내려온 아이도 하나도 안 틀렸다며 좋아했고, 같은 학년의 다른 친구들의 연주를 끝까지 지켜보고 기가 죽을 법도한데 여전히 본인이 2등은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연신 웃었다.
상을 탈 일은 없겠다고 단념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얼마 후에 선생님한테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어머니 축하드려요. 00이 준대상 탔어요.
준대상? 머리 털나고 그런 단어는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 잘 치는 아이들 속에서 우리 아이가 상을 탈 일이 없었을 텐데 상을 탔다고? 그것도, 이름도 생소한 준대상? 설마 하며 2등이냐고 물어보니 그게 아니고 점수가 딱 90점이라 주는 상이란다. 정확하게는 잘 모르지만 순위를 매기는 게 아니고, 절대평가로 점수에 따라서 90점 초과, 80점대, 70점대 이런 식으로 상을 수여하는 방식이라고 추측했다.
딸에게 준대상이라며 축하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콩쿠르의 상 수여 방법이 이상하다는 솔직한 심정은 감추지 못했다. 준대상이라는 상도 생소하고 점수에 맞춰서 상을 그렇게 다 주는 게 맞느냐의 여부를 따지며 아이에게 진정으로 축하해주진 못했던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콩쿠르라는 이름으로 치러진 대회에서 그런 상을 주는 것엔 동의할 수 없다. 우리 아이가 상을 타건 못 타건 당연히 등수가 있어야 하고, 그 등수에 해당하는 학생에게 상이 부여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콩쿠르를 통해 우리 아이가 한 뼘 성장했다고 느낀다. 피아노 선생님은 주어진 레슨시간에 누구보다 많이 참석했던 아이가 우리 딸이라고 칭찬했다. 실력만큼이나 성실성도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목표를 향해 성실하게 임하는 자세가 본인 스스로 성취감, 또는 자존감을 높여줬을 테다. 같은 곡을 반복해서 치면서 곡을 완성해가고 다듬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아이의 피아노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음은 물론이다.
나 또한 아이에게 이번에도 많이 배웠다. 다른 아이들의 연주를 듣고도 잃지 않은 자신감, 그리고 결과나 과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내일을 맞이하는 자세였다. 우리 아이는 1점만 높았으면 대상이었다며 아쉬워하면서도 준대상을 탔다는 말에 무척 기뻐했다. 그러면서 이번 콩쿠르가 너무 재미있었다면서 내년에 꼭 다시 나가고 싶다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