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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엄마 Nov 23. 2022

휴직을 하고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애써 한 외면이었을까? 잘 주행 중인 차에 브레이크를 밟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던 걸까? 나도 그랬으니 너도 그런 것쯤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심리였을까?



  육아휴직을 한 후에 복직할 때는 발이 쉽게 떨어지질 않았는데,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무감각했던 게 사실이다.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매일 아침 데려다주고, 오후에 데리고 왔었고 학교에서 운영하는 돌봄교실까지 신청해놓은 상태였음에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었다. 그런데 둘째는 언니도 있으니 같이 아침 먹고 같이 등교하고 하교하면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 같았고, 본인도 거기에 어떠한 불만도 나에게 말한 적이 없어서 특별히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했었다.



 본의 아니게 휴직을 하고 보니 그간 보이지 않았던, 어쩌면 보지 않으려 애썼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


  1층 로비에서 아이들, 주로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기다리는 엄마들 사이에 서있으면 가장 크게 '엄마'를 부르며 뛰어나오는 아이가 바로 우리 둘째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작은 키에 단추 구멍만 한 눈을 지지 감고 웃으면서 굴러온다. 나는 굴러 나오는 둘째를 번쩍 안아서 엉덩이를 한 번 토닥여준 후 오늘 학교에서 재미있었냐고 물어본다. '요이땅'하면 달리기를 하듯이 매일 자기 반에서 가장 먼저 나와야 직성이 풀린다. 넘어질까 걱정이 되면서도,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짠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둘째는 돌봄 교실을 이용할 수 없게 되어서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언니랑 끝나는 시간이 한 시간 차이가 나는 날에는 교실에서 한 시간씩 기다렸다가 같이 하교를 하게 했다. 다른 아이들은 채비를 챙겨서 하교하고 있을 때 멀뚱멀뚱 자리에 앉아서 그림을 그린다던지, 책을 읽으면서 보냈을 그 아이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이 가서 가슴이 아린다. 그 어린 게 엄마가 데리러 오는 아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부러웠을까...



   언니 기다리는 시간도 보낼 겸 요리가 좋아 들었던 방과 후 요리수업도 엄마를 일찍 보는 게 더 좋다며 그만두었다. 뿐만 아니라 참새 방앗간처럼 집에 오는 길에 있는 놀이터에서 같은 반 친구들이랑 한 시간 정도 실컷 뛰어다니면서 논다. 오는 길에는 산책로에 있는 운동기구에서 '김치'하면서 사진도 꼭 찍고, 애교를 부리며 오늘은 무슨 과자가 먹고 싶다고 말하며 집 앞 편의점에도 출근도장을 찍는다.



  이제는 더 이상 언니가 학원 간 사이에 소파에서 책을 읽거나 뒹굴거리다가 홀로 잠들 일도, 학원에 있을 친구에게 의미 없이 문자들을 보낼 일도, 와이파이가 연결 안 된 휴대폰으로 애니메이션을 봐서 데이터 요금이 몇만 원 나올 일도 없다. 엄마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엄마가 하는 건 뭐든지 같이 하자고 종알종알 이야기하고, 휴대폰은 어디에 처박혀있는지도 관심 없는지 오래다.



 나의 두 번째가 너의 두 번째는 아닐 텐데, 너의 첫 번째를 몰라줘서 미안해. 다른 아이들이 부럽다고, 엄마가 일찍 데리러 오면 안 되냐고 떼 한번 부리지 않은 너의 의젓함이 고맙고 미안해. 엄마가 찬란하고 해맑은 가슴 뛰는 초등학교 1학년을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해서 미안해.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서 손 타지 않게 알아서 커버린 어린 시절의 나처럼, 나의 둘째도 어느새 그런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2학년이 되면 엄마가 데리러 오지 않아도 되냐는 나의 질문에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에게, 먼저 엄마에게 그만 와도 좋다고 말할 때까지 데려다주겠노라고 약속했다. 휴직으로 인해 나는 놓칠뻔한 둘째의 1학년을 옆에서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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