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나에게 5

파리 출장기5 - 다정한 사람

by GIL




처음 신입사원이었던 시절을 떠올렸다.

합격 전화를 받고 그녀는 펑펑 울었다.

월급을 받아 내가 번 돈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매일매일 머릿속이 꽃밭이었다. 행복했던 시절은 잠시.


몇 번의 퇴사와 입사를 겪으면서 질량 보존의 법칙을 이해하였고 자신에 대해 고민과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올라 갈수록 정치와 아부,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각종 인사와 고과에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녀를 직접 괴롭히지는 않지만 그녀의 상사를 미친 듯이 갈구는 그 위의 상사를 보며 섬뜩했다. 이 업계란 정말이지, 그런 사람들만 끝까지 살아남는 정글이다.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나고 예쁘고 감각 있고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모임 - 실제로는 그저 유행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사람들일지라도 - 에서 끝까지 버티고 살아남는 사람들을 리스펙 하면서도 진절머리 나게 싫었다. 어릴 적 배웠던 동화 속 권선징악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정치질과 아부만이 살아남는 세상이다.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있을 거라기에 큰 변화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다.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그녀는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매번 스스로에게 되뇌던 마지막 출장이라는 생각을 실행해 보기로 했다.


떠나겠다는 결심


휴직을 하겠다고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가 맡았던 업무를 가장 어여삐 여기는 자기 새끼에게 주는 임원을 보며, 자신이 쌓아 올린 탑이 억울해서 번복할까도 잠시 고민했다.

그때 그녀의 최측근이 이렇게 얘기했다.


"그거 니 거 아니야, 동일시하지 마. 니 거는 여기 있어, 너의 아들, 딸, 너의 가족."


머리를 한 대 쥐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애지중지 잘해보려고 동동거렸을까?

그저 일개 부속품은 잠시 쉬고 돌아와서 다시 그 자리, 혹은 다른 자리에 끼워 맞춰지면 되는 것을, 21세기 노예 주제에 주인의식을 가졌다니. 주제파악도 못하고 설친 자신에게 너무나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 비행기를 타기 전에 잠시 미술관에 갔다.

예쁜 니키 드 생팔과 더 예쁜 그녀의 작품을 본 뒤 튈르리 공원을 가로질러 걷는다.

다른 것은 하나도 아쉽지가 않은데, 파리의 미술관에 가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그렇지만 이런들 저런들 어떠랴.

그녀는 파리를 그리워하게 될까?



앞으로 그녀의 인생이 어떻게 갈지는 모르겠다.

우선은 짐을 싸서, 잠시 따뜻한 나라에 갈 것이다.

그리고 다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그녀 자신에게, 가족에게, 그리고 약한 사람들에게 다정한 사람


다정한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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