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나에게 3

파리 출장기

by GIL


자유의 몸이 된 그녀는 서둘러 나와 택시를 잡았다.


도로에 서있는데 갑자기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숙소로 바로 갈까 고민하다가 방향을 틀어 20년 전에 가본 피카소 미술관에 갔다가 간단히 저녁을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피카소 미술관이라니! 몇 번을 가고 싶었지만 다양한 사정으로 가지를 못했다. 이번에도 관람 시간은 40분 남짓 남았다고 했으나 촉박하다고 얘기해 줬을 뿐, 입장을 거절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녀는 행복했다. 이번이 그녀의 마지막 파리 출장이고, 마지막으로 즐기는 파리에서의 여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리마다 구석구석 늦은 오후의 햇살이 스며들어 반짝이고 있었다.


티켓팅을 하던 직원이 본인은 2층이 제일 좋다며 시간이 없으면 2층부터 빨리 보라고 추천했다. 파리에 와서 처음으로 타인에게 친근함을 느끼며 그녀는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자마자 청색 자화상이 보였다. 젊은 시절이었음에도 퀭하고 외롭게 늙어버린 것 같은 피카소의 모습과 다양한 그림들을 본다. 한 명의 사람이 이뤄낸 결과라기에는 너무도 많은 세계가 합쳐진 그의 작업을 보며 다시 한번 천재는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눈에 기름칠을 좀 했다는 것에 감사함을 표하며, 그녀는 빠르게 저녁을 먹으러 다음 행선지를 향해 걸어간다.

채워있고 또는 비어있는 갤러리 길을 걸으며 스치듯 그림들을 구경하고는 근처의 크레페 가게를 향했다. 현지인들에게도 유명한지는 모르겠지만, 관광객들로 항상 붐비는 것 같은 곳이었다. 운 좋게 딱 한자리가 남아 있어서 문간에 앉아 애플 사이다와 바나나가 얹혀있는 크레페를 시켰다. 향을 음미하거나 이런 건 전혀 몰랐지만, 그저 달콤한 술인 애플사이다가 시원하다 생각하며 벌컥벌컥 마셨다. 배가 고프다고 느낄 즈음 달콤한 향이 코 끝을 찌르는 바나나와 아이스크림이 얹은 크레페가 나왔다.


거의 한입에 털어 넣고는 주변을 살펴보니 다들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며 먹고 있다. 자기 혼자만 이렇게 허겁지겁 급하게 먹는구나 하고 그녀는 웃음이 나왔다. 뭐가 그렇게 모든 것이 급한 걸까? 회사에 갈 때도 매일 뛰고, 먹을 때는 한입에 훌훌 털어 넣고, 주변 사람들에게 빨리 하라고 재촉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조바심 내고 전전긍긍하는 날들. 팀을 옮긴 후에는 매일이 그런 삶이었다. 명절이고 주말이고 연락을 하는 상사들, 점심시간이나 퇴근 직전에 일을 주는 것도 다반사였다. 그냥 그런 게 일상이 되어버리고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런데 한국으로부터 9000km 나 떨어진 파리에 와서도 똑같이 그녀는 무언가에 쫓기고 있었다. 무엇이 그녀를 끊임없이 쫓아오는가? 그것은 상사도, 본사 파트너도 아닌, 그녀 자신이었다. 그녀의 마음 한 구석이 그녀를 끊임없이 몰아가고 있다. 끝까지 몰아붙여 진이 다 빠진 후에야 그녀는 안도하곤 했다. 대체 무엇이 불안하고 무엇을 안도했던 걸까?


크레페를 먹고 나와서 조금 걷다가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퇴근길의 긴 여정은 서울이나 파리나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어디에 있든, 목적지는 항상 멀리 있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