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출장기
그녀는 파리를 좋아하는가?
아니 좋아하지 않는다. 오만함과 자부심의 어딘가는 항상 나의 한구석을 불편하게 한다.
하지만 그녀는 동시에 파리를 좋아하는 것도 같다. 왜냐하면 파리는 그녀의 어느 빈 구석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출장 둘째 날, 그녀는 혼자 눈을 떠서 가기 싫다 가기 싫다 가기 싫다 수천번을 되뇌었다. 아침에 조식을 먹으러 가니 온통 관광객들인데 하나같이 기분이 너무 좋아 보였다.
나만 빼고. 나만 빼고 다 행복해 보이는 모습에 베알이 꼬인 걸까?
날도 구질구질해서 창가에 앉았는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삶은 계란과 푸석한 사과를 우걱우걱 먹는다. 싸늘해진 커피를 벌컥벌컥 마신다.
방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시 눕는다.
가기 싫다 가기 싫다 가기 싫다 생각하며 이불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미니, 우중충한 창문 너머 노랗게 물든 플라타너스 잎이 너울댄다.
스치는 바람에도 울렁이는 그녀의 마음
결국 시간은 다가오고야 만다.
우습게 보이면 안 되니까 예쁘지 않은데 예쁘게 하고 가야 하고(대체 어떻게!), 자료는 손목 나가게 바리바리 싸들고 나가야 한다. 즉, 부담스럽다.
변두리에 싸구려 호텔에 묵기 때문에 택시는 기본 1시간인데, 택시 냄새와 교통체증이 뒤섞여 그녀는 택시를 탈 때마다 메스꺼움을 느낀다.
출근길에 비둘기 집과 비둘기 나무, 도로에 터져있는 비둘기를 보았다. 불쾌함이 차오른다.
여기 오기 며칠 전부터 속이 쓰리다. 아마도 지금 자신의 기분과 일치하는 몸상태이겠지 생각한다.
도착한 회사에 들어가서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곧 있을 회의 준비를 한다. 서울에서 자료를 보내기로 한 후배 동료를 기다리느니 그냥 내가 하고 말아야지 생각하며 긴급하게 자료를 정리한다.
느려 터진 사람과 일하니 속이 터지는 건 언제나 그녀 자신이다.
어제 사장끼리의 일대일 매치는 그렇다 치고 오늘 실무자끼리의 회의 때는 밀리지 않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얘기해야지 생각하며 이런저런 자료를 준비하며 되뇌어본다.
그러나 막상 회의가 시작되니, 정작 자료는 쓰지도 않고 울분을 토해내며 니들이 이러니까 매출이 안 나온다고 판매자들이 맨날 울면서 전화한다고 말하다가 그만 그녀도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다.
맞다. 투 머치 F의 화법이었다. 결국 서로 이해한다며 어깨를 툭툭치고 정말 이해했는지는 미궁 속에 갇힌 채 다시 일을 시작한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날이 저물어가고 회의까지 끝나자 갑자기 끝이 보이는 기분이 들어, 그녀는 잠시 점심 산책을 다녀온 후에 불타올라 일을 했다.
커피는 조금만 더 마시면 진짜 토할 것 같아서 이번엔 그린 티를 달라고 했다.
Dammann 의 민트 블렌딩 녹차였다. 맛이 너무 좋아서 찾아보니 상당히 비싼 티기에 한 잔 더 마실걸 그랬나 생각한다.
그리고 전속력으로 일을 마친 후 사무실에서 나와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와서 앞을 향해 걷는다.
마지막 날이었으므로 이제 그녀는 자유다.
무거운 노트북과 자료를 들고 있기는 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만은 이미 한국행 비행기를 탄 것처럼 가벼운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