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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사과 Jul 25. 2024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욕

19

 나는 그저 남편과 시아버지가 방문 목적 또는 나의 초대 목적에 맞게 백일상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다. 사전 준비와 작업은 모두 마쳤으니, 그저 상자에서 꺼내어 상차림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준비에서 비용과 구성, 주문과 배송까지 복잡한 일련의 과정들을 나 혼자서 다 마친 데다 이미 아침밥 소동에 에너지를 다 썼으니 남은 에너지가 없었다. 그러나 역시 바람은 바람뿐이었다. 이미 첫째 아이 때 백일상을 경험해 봐서 보통 일이 아니란 것을 알 텐데, 남편은 시아버지와 텔레비전을 보고 여유를 부리고 뭔가를 진행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나는 '곧 점심때가 되면 시아버지와 아이들의 식사를 또 챙겨야 하는데', '그전까지 이 백일상 과제를 끝내야 하는데'와 같은 시간이 주는 강요와 압박에 눌려있었다. '얼른 해야 되는데'가 온통 내 머릿속을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나의 호흡은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했고, 적막 속에서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나는 몹시 초조해졌다. '여보, 얼른 같이 하자'라는 말은 얄팍한 자존심이란 것에 짓눌려 입 밖으로 나올 기미가 전혀 없었다. 내 바람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시간 안에서 자존심은 결국 심장을 툭툭 깐죽대듯 건드렸다. 나는 화가 도져서 쏘아붙이듯 남편에게 말을 던졌다.  

"백일상 안 해요?!"

"아, 해? 지금?"

"그럼 하지 말던가! 됐어요, 그럼!"



나는 왜 항상 남편에게 돌아오는 답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처럼 들릴까. 쉽게 꺼트릴 수 있을 만큼 작은 불씨였던 화는 왜 저 말 하나와 반응 하나에 건물 전체 화재로 번지는 대형 화재처럼 변할까. 어느 정도 눈치가 있으면 금방 내 상태를 알아채고 몸을 바로 움직여줘야 되는데. 멋없고 무뚝뚝한 말이 일상인 경상도 남자에게 기대할 것은 빠른 행동, 그것만이 나에게 소화기 역할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큰 뜬 눈으로 꿈뻑꿈뻑 지금 하자는 얘기가 맞냐고 되묻는 남편의 표정을 보니 부아가 또다시 치밀어 올랐다.

'할 마음이 애초에 없네, 저 양반. 그냥 바로 하면 되지, 뭘 또 물어봐. 씨'

'어쩜 자기 아들인데 저렇게 관심이 없을 수가 있나? 허참 기가 막혀서. 고생이란 고생은 내가 다 했는데 얼른 애 옷 입히고 차려서 사진만 찍으면 되는 거잖아. 근데 뭐라고? 하.'



나는 입안에 넣으면 금방 녹아서 그 쓴맛이 바로 혀끝으로 느껴지는 약을, 못해도 열댓 알 입에 물고 있는 것 같은 표정으로 안방 문을 거칠게 닫았다. 그리고는 거실에서 일어나길 바라는 상황을 기대하며 귀의 방향을 바깥으로 향하고는 침대에 벌렁 누웠다. 그냥 얼른 꺼내는 흉내만이라도 내주길 바랐다. 백일이란 시간 동안 고생한 너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것까진 내가 못하더라도, 나도 이걸 너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 아들이 지금껏 건강하게 자라준 것에 대한 의미를 함께 느끼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주길 바랐다. 나의 안 하겠다는 말에 그대로 상자를 현관에 내다 놓는 남편의 행동을 보고야 알았다. 지나친 나의 바람이었다는 것. 그랬다. 남편에게 이 모든 것은 아내의 자기만족을 위한 하나의 이벤트에 불과했다. 특별히 따로 큰돈을 들인 것도 아니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그저 휴식을 방해하는 귀찮은 일이었다. 목구멍까지 욕이 올라찼다. '썅.'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남편에게 속으로 욕을 내뱉던 날이. 결혼 7년 차가 되어 혼자 내뱉기 시작한 나만의 욕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강도가 커지고 빈도가 잦아졌다. )



여자의 언어 체계와 남자의 언어 체계가 아무리 다르다 한들, 때로는 단순한 언어체계를 넘어 눈치라는 기제를 작동시켜 내면의 감각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대화가 필요할 때가 있다. 특히 남녀가 대화할 때는 그렇다. 그때가 바로 이때였는데. 진짜 안 한다는 말이 아니라 얼른 움직이란 말인데 말 귀를 이렇게 못 알아들을 수가 있나. 나는 아들의 한 번뿐인 백일을 기필코 기념해 주겠다는 일념하에, 침대를 박차는 내 무거운 두 다리에 자존심을 붙여 거실로 나섰고 소리쳤다.

"빨리 하자고요!!!"

"안 한다며. 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해. 뭐 어쩌라는 거."



'이랬다가 저랬다가가 아니라 이 양반아. 말귀 좀 알아 들어먹으라고.'

온갖 죽을상을 지은 표정으로 겨우 백일상은 마쳤고, 시아버지가 나의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억지로 웃어지는 게 안 됐다. 가식적으로 괜찮은 척할 수 없었다. 그냥 일관된 무표정으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표정이 돌처럼 굳어있었다. 냉기가 도는 적막 속에 백일상차림은 그렇게 일단락 됐다. 나는 두 남자에게서 어떠한 말도 듣지 못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내가 듣고 싶던 말은 그저 마음으로 수고를 인정해 주는 말. '그동안 참 고생 많았다, 애들 키우느라 수고 많았다. 애썼다.' 이거뿐이었다. 이런 흔한 말조차도 듣기 힘든 남자들과 더 이상 한 공간에 같이 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무심한 시아버지를 탓하고, 남편을 탓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시아버지에게 화살이 뻗치다니, 이 얼마나 옹졸한가. 옹졸한 나임을 깨닫고 인정하는 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알아서들 시간을 보내시라 하고 혼자 집에서 나왔다. 마음의 불을 끄고 식힐 시간이 필요했다. 불을 끄는 건 유일하게 물이다.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영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이게 언제부터 시작된 부정적 감정인지, 무엇이 시작이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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