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사과 Jul 29. 2024

물안경에 차오른 물

21

수영을 시작한 지 벌써 9년 차가 되었다. 제주에 내려오기 전부터 재활 치료의 일환으로 수영장에서 걷기부터 시작해 가벼운 수영을 했었다. 육지에서 집중 치료가 끝난 후에는 간헐적으로 수영을 했지만, 실내 수영장을 꾸준히 다닌 건 제주에 내려와서부터다. 물속에서 걷거나 움직이는 것은 육상보다 무릎에 하중을 덜 주기 때문에 나에게 꼭 필요한 운동이었다. 그리고 물속에 있을 땐 언제나 마음이 편안했다. 물은 나의 타오르는 불같은 에너지를 조절해 주는 하나의 명상 방법이었다. 다행히 수영은 남편과의 공동 취미생활이었기 때문에 마음의 불편함 없이 당당하게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다. 물론 같이 수영장에 가도 각자 따로 수영을 했지만, 최소한 남편이 내가 하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임신과 출산 후에는 각자 가능한 시간에 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제 남편은 출근 전에 아침 수영을 하고, 나는 아이들 하원 전에 오후 수영을 한다.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도 수영은 꾸준히 했다. 당시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다녔다. 다들 배가 부른 임산부가 웬 수영장인가 싶어 여러 번 쳐다보는 제주 삼촌들의 시선이 많았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병원에서도 임신 초기에는 감염 등의 이유로 수영장을 추천하지 않았지만, 나는 뜨거운 물만 아니면 괜찮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때도 입덧으로 생긴 초기 우울증에 힘들던 시기라 물속에 꼭 들어가야만 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도 출혈 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다녔지만, 출산 이후 두 아이를 돌보느라 한동안 가지 못했다.



그러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간 수영장은 겨울이라 사람이 여름보다 적었고, 특히 점심시간 전이라 유독 더 적었다. 차가운 바깥공기와 수영장에 들어서며 코끝에 스치는 소독물 냄새, 그리고 감정까지 메마르게 만드는 건조함을 조금은 촉촉하게 바꿔주는 습기. 여름엔 그 습기가 물밀듯이 밀려와 답답하게 만들지만, 겨울엔 참 고맙고 반갑게 느껴졌다. 그날이 유독 그랬다. 평소처럼 빠르게 샤워를 하고, 두 번의 임신을 거치며 계속 입어온 9년 된 낡은 파란 수영복을 입고, 수모 안에 머리를 쓸어 담았다. 물안경을 수모 위에 올리고 차가운 물 안에 뛰어들었다. 실내수영장은 여름에도 처음 물에 들어갈 때는 차갑게 느껴지지만, 워밍업을 하고 나면 몸이 금세 물의 온도에 적응했다. 25미터의 걷기 레일에서 삼촌들을 따라왔다 갔다 하다 보면 어느새 발열하고 물의 온도에 익숙해졌다. 몸이 풀리고 나서는 자유 수영 구간으로 헤엄쳐갔고, 그때부터 나의 고요한 수영명상은 시작됐다.


내 몸에 가장 무리가 없고 편안한 영법은 평영. 사실 독학으로 터득했다. 수영 강좌를 끊고 배워보려 시도했지만, 한 명씩 헤엄쳐가는 수업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러 명이 한 곳에 같이 있는 게 싫었다. 그래서 수영을 주먹구구식으로 혼자 배웠다. 영상을 찾아보거나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잘하는 사람을 관찰하고 따라 하려 애썼다. 특히 내가 다녔던 수영장들은 선수들이 훈련하러 많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선수들이 몸을 쓰고 호흡하는 것을 보고 흉내 내며 따라 했다. 그래서 내 수영 실력은 아주 좋지는 않다.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면 됐다 싶다. 지금은 체력이 많이 떨어졌지만, 수영을 꾸준히 해서 체력이 올라왔을 땐 1000미터까지 멈추지 않고 수영할 만큼 됐으니 만족한다. (요즘은 뱃속의 아이와 함께 무리 없이 600미터 정도 가는 것 같다.)



평영으로 50미터 레일을 오가며 머릿속에 계속해서 고장 난 팝업창처럼 떠오르는 생각들. 시아버지 아침밥상, 둘째 아이 백일상, 그리고 남편의 말. 갑자기 울컥하며 억울함과 서러운 감정이 훅 치고 올라왔다. 그 감정은 곧 '누구도 나의 애씀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이 세상에 없다'는 외로움과 슬픔으로 바뀌었다. 가장 의지하던 남편에게서 큰 배신감을 느꼈던 말들은 8개월이 지나서야 진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물속에서 물안경 안으로 뜨거운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물속에서 울어보긴 난생처음이었다. 다행히도 물의 차가움과 고요한 파장은 아무도 나의 울음을 알아챌 수 없게 만들어주었다. 한참을 물속에서 울었다. 숨이 꺼이꺼이 할 만큼 울었는데도 이상하게 마음 한편은 편안했다. 아무도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니 마치 투명망토를 쓰고 울고 있는 유령이 된 기분이었다. 그제야 내가 큰 상처를 받았다는 걸 알았다. 너무 큰 상처라 감내할 수 없어서 마음 한 구석에 치워두었던 감정이었다는 걸.



실컷 물속에서 울고 나니 물안경 자국은 진하게 나 있었다. 선명한 자국 안으로 두 눈은 빨갛게 부어있었다. 어느 때처럼 빠르게 다시 비누칠을 하고, 샤워를 하고, 머리카락을 바싹 말렸다. 마침내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무척 연약하다는 것,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생긴 문제는 그때의 사건이 결정적이라는 것도 인정했다. 이 감정적인 상처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것, 남편과의 대화가 꼭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겼다. 울음과 눈물이 정화와 정리를 돕는다는 것도 다시 깨달았다.

슬픔은 나쁜 게 아니다. 울어도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살린 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