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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사과 Aug 02. 2024

엄마도 말고, 아내도 말고,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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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물속에서 눈물을 쏟아낸 뒤, 마음에 또렷하게 정리된 게 있었다. 그것은 나만의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겠다는 확고한 생각이었다. 여러 역할의 경계에서 오직 '나'를 위한 시간이 존재하지 않은 채로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다. 출산 이전에는 남편과 관계에서, 출산 이후에는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융합'의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느라 나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내가 이루고 있는 가족은 독립적인 개인의 고유성을 서로 존중하며 공동체로 함께 지내는 이상적인 형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기대고 소속되어야만 존속할 수 있는 기생의 형태처럼 느껴졌다. 사전에서 융합의 정의를 찾아봤다. "다른 종류의 것이 녹아서 서로 구별이 없게 하나로 합하여지거나 그렇게 만듦 또는 그런 일".

이게 내가 원했던 형태의 가족인가?



나는 너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싸우고 온갖 불화를 만들며 살아온 부모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40년 가까이 보아 왔다. 어린 시절부터 그 영향을 받고 자라서, 내가 부모가 되면 절대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이상적인 부부의 관계나 결혼생활은 다른 두 사람이 융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배를 탔으니 방향이 같아야 한다는 말, 두 사람은 언제나 같은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최근에 읽은 심리학 책에서 융합을 이렇게 설명했다. "서로의 독립성을 방해하고, 집단의 구성원을 병들게 하는 것. 융합은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각자의 경계를 인정하지 않는 행동이며, 이 융합 관계를 유지하려면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맞추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을 자기에게 맞추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양쪽 모두 편하지 않으므로 서로 간에 진정한 평화는 없는 것."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설명이었다. 그대로였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진정한 평화가 없었다.



둘째 아이가 이유식을 할 시기가 되어 한창 바쁘던 시기였다. 이제 갓 6개월 남짓 된 아이를 두고 혼자 시간을 내어 무언가를 배우러 밖으로 다닌다는 것이 사치라고 느껴질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로서 최소한 해야 하는 역할은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유식 외에 다른 집안일에서 점차 손을 놓고 어렵게 시간을 마련했다. 사실 집안일을 포기한 거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을 만들 수 없으니까. 출산 이후로 체력적인 어려움에서 슬슬 내려놓긴 했지만, 정리와 청소에 대한 강박증이 있던 나에게 집안일을 포기하고 그 대신 다른 무언가를 한다는 건 아주 큰 내려놓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주 1회씩 승마와 도예를 배우기로 했다. 하나는 몸을 움직이는 시간, 하나는 손을 움직이는 시간.



승마는 오랫동안 배워보고 싶었지만 육아 때문에 할 수 없다고 여겼던 활동이었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둘이나 생기고 나서는 남편의 외벌이에 기대는 생계비 안에서 지출해야 할 비용이 컸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남편과 둘만 있을 때 등록까지 다 한 뒤였는데 첫째 아이 임신한 걸 알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안전 때문에 취소했었다. 현실적인 비용으로 고민하던 중 때마침 시민 건강을 위한 승마체험으로 강습비를 지원해 주는 정책이 생겼고, 나는 무조건 지금이 승마를 배울 기회라고 생각했다. 또, 말과의 교감을 통해 정서적인 안정을 찾고 치유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기에 지금 나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겼다. 같이 살고 있는 사람과 이루어지지 않는 영혼의 교감을 깊은 교감 능력을 가진 말과 함께 나눠볼 수 있을까 싶은 기대도 있었다.



도예는 둘째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을 때 배우기 시작했었는데, 출산을 하면서 시간적 여유가 없어 그만뒀던 활동이었다. 배우던 시기에는 첫째 아이를 가정 보육 중이었는데, 지도해 주신 강사님이 배려해 주신 덕분에 아이와 함께 작업실을 다닐 수 있었다. 손 끝의 감각에 몰입하는 시간이 그저 좋았다.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며 흙에서 그릇으로 만들어지는 과정 안에서 느끼던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좋았다. 어릴 때도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손재주상'이라는 귀여운 상도 참 많이 받았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도예만큼은 지속적으로 하고 싶던 취미였다. 그러나 도자기를 고온에서 구워내려면 유약을 발라야 하는데 유약이 임산부에게 안전하지 않은 성분이어서 도예 선생님께서도 가급적 피하라고 권하셨다. 또 유약이 잘 발리기 위해서는 잘 마른 도자기 표면을 곱게 다듬어야 하는데, 그걸 위한 사포질을 할 때 손목을 무척 많이 사용하다 보니 신체적 한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도예도 승마와 마찬가지로 시에서 재료비와 소성비만 부담하면 수업료를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니 다시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남편과 상의해서 결정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큰돈 들이지 않고 내 시간을 쓰겠다는데 남편한테 일일이 허락을 받고 양해를 구해야 하나 싶은 욱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래서 내 맘대로 결정하고 통보했다. 앞으로 그렇게 할 테니 그리 알고 있으라고. 물론 남편은 여태 그랬듯 이번에도 나의 선택을 싫어했다. 승마는 골프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드는 초고급 스포츠라고, 몇 백억 단위 매출이 나오는 회장님도 골프나 치지 승마를 안 하는데 그걸 왜 네가 하고 있냐고, 그걸 배울 처지가 아니라며 하지 말라고 싫어했다. 이미 등록했으니까 이번까지만 하라고 했다. 또, 도예는 이미 할 일도 차고 넘치는 상황인 데다 매번 바쁘다면서 도대체 그걸 왜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지으며 싫어했다.



승마 배우는데 10회에 50만 원, 시에서 50%나 강습비를 지원해 주었기 때문에 겨우 회당 2만 5천 원이었다. 도예는 재료비 흙값 8천 원에 소성비 2만 원 남짓이었다. 나는 남편이 싫어하는 이유가 정말 금액 때문인지 쉽게 동의되지 않았다. '그 시간에 집안일이나 하지, 설거지나 더 하지, 청소나 더 하지, 애들이나 더 신경 쓰지, 그래야 일 마치고 돌아와서 내가 덜 하고 안 하고 쉴 수 있는데'의 마음뿐이구나 싶었다. 경제적 수입이 일어나는 일이 아닌 다른 것은 전부 이 남자에게는 불필요한 일일 뿐이었다. 이 남자는 나의 고유성이나 독립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내가 엄마도 아닌 아내도 아닌, 그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 자체를 부정당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욕적이었다.















*김정규, <이해받는 것은 모욕이다>, EBS BOOKS, 2024, 119~1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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