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
너를 만났다.
하늘이 하품을 하는 사이
밤으로 피어오르고
길거리의 사람들
저마다 구름조각 입에 물기 전 즈음
그곳에서
난 너를 만났다.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떨림이 또 다른 떨림과 뒤엉켜
공허한 눈빛만이 우두커니 서있는 곳.
그때
난 네 모습을 보았다.
예쁘다고
오늘 참 예쁘다고
보고 싶었다고
네가 정말 보고 싶었다고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건
맘 속 깊은 곳에 있는 말일 테니
제 존재를 드러내지 못한 말들은
밤하늘 이름 모를 별자리가 되어
영롱한 기억만을 내뿜을 뿐이었다.
너를 미워하는 날도 많았다.
바람은
차가워도 얼지 않는 게
그래서 바람이었다.
네가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네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네가 좋아하는 밥을 먹고
그래, 사랑에 물든다는 건
이처럼 너로 가득 차는 기쁨이다.
조율되지 않은 호흡으로
머뭇거리는 시선으로
어울리지 않는 흔적으로
너를 사랑한 날들.
나는 너에게
시간을 머금은
어스레한 빛 한 점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는 건
사랑이 시작됐다는 것.
내겐 너무도 선한 네 뒷모습이
마음결 따라 어스름으로 일렁인다.
바람은 또다시 불었다.
어스름도 사라지고
떨림도 채 녹지 않았다만
침묵의 울타리 속에서
네 이름이 불리었고, 그리고
난 너를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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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좋아했던 내 첫사랑. 몇 년을 짝사랑하며 결국 2년여의 연애를 했고, 이젠 추억의 담 너머로 던져진 시간들만 남아있다. 서덕준 시의 한 구절처럼 사실, 내 시의 구 할은 모두 그 애를 가리켰다. 이 시도 짝사랑하던 시절 지었던 시다. 1연과 2연은 그 애를 만났던 날을 묘사했다. 그날은 늦가을이라 밤이 되면 사람들 입에서 입김이 나올 것 같은 그런 때였다. 4연의 바람은 그 애가 나를 좋아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인데, 나를 만날 때마다 워낙에 차가웠던 애였지만 나는 그 바람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그 애를 어스름 같이 좋아했고, 그러고 싶었다. 낮이나 밤처럼 '밝다. 어둡다.'로 단순히 형용되거나 노을 같이 활활 타오르는 사랑이 아닌, 찰나의 순간이라도 잔잔하고 고요하게 다가가고 싶었다. 그 애를 향한 발걸음이, 그 희미한 발자국 소리조차 부담이 되지 않길 바라는 내 조심스러운 진심이었다. 지금도 난 노을보다 그 뒤에 따라오는 어스름에 더욱 마음이 일렁인다.
몽생미셸 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