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by 감성의 긁적임

<너의 이름은>


너는 내게 무엇이었을까. 풀잎 하나 겨우 눕히는 바람 한 점에도 이름이 있다는데, 너의 이름을 나는 무어라 기억할까. 너에 대한 기억 위에 쌓여 있는 낡은 시간을 털어내고, 그 속을 유영해 어딘가 있을 너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너는 누구인가.


때론 파도였다. 너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너는 살며시 내게 스며들어 진한 물자취를 남겼고, 그 후에 너와 떨어져 있어도 네 빛깔로 물든 하늘이 되어 나를 온통 뒤덮었다. 너를 만난 이후로 내 머릿속은 살얼음판이 되었다. 생각의 걸음을 헛디뎌 네 생각에 잠길 때면 너를 말릴 틈도 없이 너는 성난 파도처럼 내게 들이닥쳤다.


너는 알았을까. 해가 하루에 한 번씩 뜨고 지며 하늘에 웃음을 그리듯 온종일 네 생각으로 미소 짓는단 걸. 네 곁에 있으면 흐르는 시간 따라 내 가슴도 초침 마냥 떨었단 걸 너는 알까. 밤하늘 쏟아지는 별들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알 게다. 수많은 광음光陰이 응축된 암흑을 꿰뚫고 한 순간 터져버리는 그 눈부심. 그림자 하나 만들지 않는 그 순정한 별빛. 너를 바라보는 게 꼭 그것이었다.


우리의 추억에 마지막 온점은 찍히지 않을 것 같았지만, 이제 우린 헤어졌다. 닿을 수 없어 메아리조차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너는 떠나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엎질러진 퍼즐처럼 순서 없이 놓인 너의 기억을 더듬어 보는 일. 수천 번의 눈맞춤, 수만 번의 설렘 모두 하나씩 음표로 만들어 오선지에 아로새기는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네가 보고플 때면 도돌이표로 되돌아가 두근두근 뛰었던 심장의 자취를 다시 걸어갔다. 그래, 난 네가 아직 그립다. 우리의 추억이 흩뿌려진 곳은 그리움의 고향. 나는 연어가 되어 머리를 그곳을 향해 두었고 순간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그리움에 닿았다. 우린 헤어졌지만 멀어지지 않았다고 나는 믿는다. 헤어진다는 건 멀어지는 게 아닌 우리가 서로에게 다가갔던 그 걸음들을 온전히 추억에게 맡기는 것일 테니.


노을이 진다. 바람도 유난히 많이 분다. 늘 그렇듯 바람은 그 꼬리를 알려주지 않는다. 시작도 끝도 모른 채 유유히 네게 실릴 뿐, 네 속에 있어 너를 느끼지 못했다. 수만 갈래의 바람 그중 단 한 가닥의 너를 오롯이 헤아리면 저기 내 시선의 끝이 닿는 곳, 그곳에서 네가 불어온다.


너를 사랑한 나날이었다.


너를 만났던 로잔의 레만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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