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차를 먼저 마신 후, 밥을 먹으러가는 사랑을 했다

차갑지만 뜨거웠던 그날밤의 기록

by 소금


“8시에 이태원역1번출구에서 만나자”


로보트만큼이나 어색한 소개팅남의 무뚝뚝한 카톡을 끝으로 우린 연락이 끊겼다.

혹시나 서로가 맘에 들지 않을 것을 대비해 우리는 카페에 가기로 했다. 밥까지 먹으면 너무 아까우니까.


나 역시 같은 맘이었기에, 순순히 그에 응했다.


소개팅 당일 나는 애써 묶은 똥머리를 한번 더 가다듬었다. 보통은 긴머리를 청순하게 풀어내리고 나가는 자리겠지만, 그다지 청순하게 보이고 싶지 않던 나는 가장 활동하기 편한 스타일로 출발했다. 심지어 소개팅남은 키가 아주 크다 들었지만, 못들은 척 155cm의 키로 평소 신던 플랫슈즈를 찍찍 끌고 나갔다.


“내가먼저 도착했네.. 이태원 산다고 들었는데”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사진 속 그 아이와 비슷해보이는 사람이 근처에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 순간, 거대한 미어캣마냥 멀찍이서 동태를 지켜보다 쭈뼛쭈뼛 다가오는 그 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친구에게 들은 대로 정말 키도 크고 , 심지어 너무나 멀쩡하고 잘생겨보이기까지 하는 그런 아이였다. 왜 소개팅에 나오는지 이해 안되는 비주얼에, 난 3초 정도 머리속으로 막장 소설을 쓰며 잠시동안 의심을 품었다.


“안녕.”

“응 안녕. 알아봤네”


짧은 인사와 함께 우리는 언덕너머 녹사평 근처 카페를 향해 걸어갔다. 수다쟁이었던 나는 카페로 향하는 10분 남짓을 못 참고 얼마 전 교정이 끝나 너무 신난다며 입을 자유분방하게 벌려 이빨을 까보이는 둥 별로 소개팅녀로서 추천하지 않는 행동과 각종 개드립을 장기자랑하듯 선보였다. 그 아이는 딱히 이렇다 할 큰 리액션 없이 그런 내 모습을 조용히 봐주며 걸어갔다.



“여기는 뭐가 맛있나요?”

“저희는 라떼 많이들 시키세요”

“아 ... 그럼 저는 카푸치노 주세요~! “



카페 주인과의 의미없는 티키타카를 마치고 나는 당당하게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때 그의 표정을 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뭐 이런 애가 다있지 싶었을 것 같다.


아주 친한 친구가 평생 처음으로 주선해 준 아주 가까운 사이의 소개팅.

그치만 당사자들은 전혀 기대감이 없는 그런 자리였다.


만화를 좋아한다기에 중3까지 만화부 오타쿠였던 흑역사를 기억속에서 탈탈 털어 이야기꽃을 피웠다.

서로 가릴게 없던 우리는 커피 두 잔을 마주 두고 시덥지 않은 주제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취향, 노래 호불호, 음식, 관심사 , 요즘의 생각 등등 서로를 알 수 있는 말들을 아낌없이 던져냈다.

그 아이의 이상형이 '이빨이 가지런한 여자' 라는 것은 대화를 한지 두시간 정도 지날때서야 알게되었다.

나는 개드립을 나만큼 잘치는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활짝 웃으며 알려주었다.


어느덧 카페 사장님이 마감시간이 되었음을 알려주셨고, 우리는 다시 이태원역을 향해 되돌아갔다.


“배고프지 않아?”

“어 조금 출출하긴 하네”

“음 ....... 간단하게 초밥 먹으러갈까?”

“그래. 간단하고 좋네”


그 아이는 애꿎은 손목시계를 올려다보며 담담하고 깊게 걸어갔다.

시계바늘은 열한시 십분을 지나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는 초밥집을 향해 아주 천천히 걸어 갔다. 아주 많이 늦은 , 우리의 간단한 저녁을 함께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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